구블로그/음악
리듬 게임 음악에 대해
프로매국노
2011. 5. 1. 19:43
본인이 전자음악을 접한 계기는 리듬게임이다. 이것저것 건드려 본 것은 많지만 그중 코나미의 비트매니아를 제일 재미있게 했다. 특히 곡을 선택할 때 그 곡의 장르를 나타내주는 것이 좋았다. 내가 무슨 음악을 플레이하는지 알 수가 있었으니. 이는 리듬게임이 가지고 있는 또 하나의 재미였다. 약 2년간 시간이 날 때마다 나는 짬짬이 비트매니아를 즐겼고, 사운드 트랙을 구해 리듬게임 음악을 듣기도 했다. 그러다 문득 ‘이런 음악과 비슷한 음악을 듣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는 리듬게임에 들어있는 한 음악에 ‘제대로 꽂힌’ 결과였고 나를 전자 음악의 세계로 이끈 동기가 되었다.
실제로 만나본 테크노, 트랜스, 하우스는 내가 상상하던 것과는 약간 달랐다. 처음에는 이에 적응하지 못했다. 보통 Original mix버전의 곡 길이는 6-7분여 가량. 게다가 리듬게임에 비해 곡의 구성이 답답하고 밋밋했다. 하지만 나는 답답함을 꾹 참고 여러 음악들을 들었다. 당시의 나는 ‘이것이 원본이다. 그러므로 원본을 듣는 편이 우월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어찌 보면 바보 같은 짓이었다. 만약 내가 기존의 전자 음악들을 리듬게임보다 먼저 접했더라면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겠지만. 하여튼 전자 음악을 접한 이후 이 ‘리듬게임 음악’이라는 위화감 물씬 풍기는 음악들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본 적이 있었다.
리듬게임에 사용되는 음악들은 표현의 자유를 박탈당한다. 먼저 분량의 제한이 있다. 대략 1분 30초간의 시간 속에서 리듬게임 음악들은 기승전결을 이룬다. 전자 음악 한 곡의 브릿지만 1분 30초가 되는 곡도 있다. 하다못해 가요도 4-5분은 하는데. 게임에 귀속된 존재이기에 어쩔 수 없지만 시간이 너무 짧다. 귀속의 문제점은 이것뿐만이 아니다. ‘리듬게임의 재미’를 위해서 빽빽하고 과장된 음악이 나온다. 말하자면 음악성보다 노트를 고려한 작곡이 된다는 이야기다. 리듬게임을 작곡해본 적이 없으므로 주관적인 생각으로만 남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는 게임의 숙명을 고려해볼 때 충분한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노트를 별로 고려하지 않은 느낌의 음악도 있으나 난이도 하락으로 인해 별 관심을 못 받는 경우가 대다수다. 리듬게임 유저에게는 치는 맛과 난이도가 중요하다. 앞서 이야기했던 ‘위화감 물씬 풍기는 음악들’은 이런 이유라고 생각한다.
반면에 리듬게임 음악을 통해서만 느낄 수 있는 재미도 존재한다. 비트매니아의 경우 나름 디제잉 시뮬레이션 게임을 지향한다. 그렇다 보니 노트를 치고, 음악을 들으며 영상을 보는 재미가 있다. 특히 초기의 음악들은 실제 클럽에서 사용하는 영상과 비슷하게 제작한 경우가 많다. 시간이 지날수록 애니메이션 같은 영상을 틀어주어 리듬게임의 ‘오덕화를’ 초래한 것은 정말 안타까운 일 중 하나다. 리듬게임 음악의 장점은 또 있다. 다양한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즐거움이다. 특히 에스닉이나 하드코어 같은 음악은 평소에 접하기가 힘들기에 그 가치가 더욱 빛난다. 이렇게 리듬게임을 하다보면 괜찮은 퀄리티의 마이너한 음악들을 많이 들어볼 수 있다. 하지만 이 속에도 단점은 있다. 내가 볼 때는 장르의 채용에 있어서 부적합한 경우가 간간히 있다. 가끔 보면 장르가 아니라 부제를 단 것인가 싶기도 하다.
이제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보자. 내가 리듬게임 음악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 계기는 ‘위화감’이었다. 여기서 ‘리듬게임 음악들을 과연 전자 음악의 범주에 넣을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해 본다. 물론 전자 음악의 범주 내에는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작곡의 방식과 반복되는 패턴 위주의 기본적인 구조는 있으니까. 하지만 이 음악들을 댄스 음악으로 분류할 수는 없다고 본다. 위에서 이야기한 내용으로 충분하다. 리듬게임 음악은 댄스 음악의 형식이 아니다. 게임을 하기 위한 음악이다. 이는 중요하다. 수많은 리듬게임 음악들이 댄스 음악임을 장르로 어필하니까. 나는 그것들이 잘못된 사실이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기왕이면 뭐든 제대로 알고 하는 게 좋지 않을까?
지금도 가끔씩 리듬게임 음악들을 듣곤 한다. 정말 좋아했던 곡들은 들을만해도 가끔씩 듣기 괴로운 곡들이 있다. 드럼 롤을 사용하는 트랜스라던지. 그러다가 음악에 집중이 좀 된다 싶으면 끝나버리니 허탈함만 남는다. 예전과 반대로 변해버린 취향에 괜한 웃음만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