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마이애미 비치

마이애미 비치 (1)

프로매국노 2013. 4. 30. 23:09

 그러니까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풀어 나가야 할까. 아마도 내 생각에는, 그래, 마치 6월의 아카시아처럼 풋풋하던, 내 고등학교 3학년 때의 이야기부터 하는 것이 옳지 않을까 싶다. 그때부터 시작된 것이었다. 뭐가 시작되었냐고? 일단 들어 보시라.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마주친 내 침대 속 낯선 중년 아저씨의 알몸같이 황당하게 아름다운 이야기들일테니까. 


 그 때의 나는 정말 얌전한 아이였다. 물론 지금도 그런 편이지만 그땐 지금과 다른 나였다. 항상 나 자신을 소중히 돌볼 줄 알았고, 내가 누군가를 위해 희생을 한다던가 오직 남을 위해 나 자신조차 지키지 못한 채로 허물어져 버릴 줄은 몰랐다. 그녀를 만나기 전 까지는 정말 그랬다. 남들과 같이 공부를 하며, 남들과 같은 책상에서 같은 시간을 보내며, 조용한 고독을 즐기던 나에게 그녀는 간암처럼 예고없이 나타났다. 아마도 지금과 같은 봄이었다. 어느날은 부쩍 덥다가 아침 저녁은 늘상 쌀쌀하면서 비가 잦았던 4월이었다. 때이른 더위에 마이를 벗어 들고 땀을 질질 흘리며 계단을 오르던 중, 나는 눈 앞에서 이제껏 보아왔던 그 어떤 것보다도 유난히 매끈하고 뽀얀 다리를 만났다. 상아로 조각한 것일까, 도자기 같기도 한데, 보기만 해도 빛이 나는 것 같다, 저걸 핥으면 무슨 맛이 날까 하는 생각을 하다 그 새하얀 것을 나의 축축한 손으로 '턱' 하고 잡아 버렸다. 


"어머!" 

"헉!" 


 윤리적인 상황 판단보다 보드라운 촉감이 생생했다. 아차 싶던 마음에 변명을 할 생각이었지만, 나는 그녀와 눈을 마주치게 되었고, 이제껏 느껴본 적 없던 묘한 감정에 대략 180의 bpm으로 몸 전체가 쿵쾅거리는 느낌 속에서 동공을 서서히 확장하고 있었다. 지금에서야 하는 말이지만 첫 눈에 반하게 되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그 사람을 살펴보는 찰나에 이런 저런 생각이 엮이며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냥 딱 본 그 순간 그 사람의 어딘가가 미칠 듯이 신경쓰여 잠을 못 이루는 그런 것이 아닐까. 어쨌든 그녀의 얼굴을 3초간 보게 된 결과, 나의 머릿속은 지금 내 눈 앞에 서 있는 여자의 맵시있게 예쁜 눈으로 가득 차게 되었다. 그리고 2초간 궁색한 변명을 생각했다. 


"그, 어, 친, 친군줄알았네, 미안해." 

"응, 괜찮아." 


 그녀는 고개를 휙 돌리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친구와 재잘거리며 사라졌다. 그리고 나의 손에는 좋았던 촉감만이 갓 사정한 허탈함처럼 남아있었다. 그리고 난 일주일동안 밤마다 열병을 앓았다. 아무런 원인도 찾지 못했다. 그저 그때의 일이, 그녀와 눈을 마주쳤던 순간만이 내 머릿속을 나방떼처럼 맴돌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결심을 했다. 그녀를 만나봐야겠다. 어짜피 같은 학교니까 한두다리 건너면 알게 될것 아닌가. 그리고 다음날, 같은 반의 원숭이같이 생긴 여자아이에게 아이스크림과 컵라면을 바쳐가며 그녀를 소개받았다. 우리는 조심스레 한 두 마디를 건네기 시작해서, 어쩌면 그대로 남았으면 좋을 법 했던 좋은 친구가 되기 시작했다. 그제야 알게 된 그녀의 이름은 선미였다. 다시 생각해 봐도 정말 예쁜 아이였다. 세번 정도 죽고 다시 태어난 뒤에도, 그녀와 한번 섹스하려면 삼일 정도는 줄을 서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그도 그럴것이, 남자의 연옥보다 시커먼 본능을 자극하는 희고 고운 살결과 늘씬하고 약소한 볼륨감이 있는 몸매, 부드러운 눈웃음, 그리고 그녀가 지나간 자리에서 은은하게 느껴졌던 향기들……. 음란함과는 전혀 가깝지 않을 것 같은 외형에서부터 반대로 근본적인 욕망을 자극하는 여자였다. 앞머리로 가려진 작고 동그란 얼굴에는 오밀조밀한 이목구비가 뚜렷하게 자리잡고 있었고, 무엇보다 눈 밑의 점이, 삼류 드라마 속에서 복수를 위해 엄한 집 딸년으로 다시 태어난 여주인공같은 그 점이 좋았다.


다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