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페이스북 똥글 명작선

사랑니 뽑던 날

프로매국노 2015. 12. 1. 16:58

사랑니를 뽑는 의사양반이 말했다.

'이렇게 복잡하고 난감한 사랑니는 보통 동네 병원에서 치료하지 않아요. 크게 잘못되진 않더라도 뒷감당이 지저분해질 수도 있으며 비교적 복잡한 기술력을 요하기 때문에.. 아마 이태원 보광동 근처에서 이렇게까지는...'

나는 이빨에 난 충치를 함마 드릴로 뽀개는 고통을 받으며 의사양반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조용히 엄지를 치켜올렸다.

'아, 아직 엄지를 치켜올릴때는 아니에요. 윙윙 쑤컹쑤컹'

으아아.. 차라리 비명이라도 질렀으면 좋았을걸. 입을 크게 벌려 뭐라 하지도 못하고 거칠게 숨만 쉬다가, 짝사랑하던 아이돌가수 매니저에게 배를 걷어차인 여중생처럼 낑낑대고 있던 나였다.

결국 어찌 저찌 누워있는 생 이빨 하나를 육등분해 뽀개버리고, 의사양반은 최근에 배운 신기술로 잇몸을 꿰매 주었다며 멋쩍게 말했다. 복잡하고 고통스러운 시술이었는데 잘 참아 주었다면서, 조심스레 나에게 따봉을 하던 의사양반..

'정핳 고통스럽군요' (발음이 안됨)

'평생 한번이니까 그냥 참아요. 그리고 이동네 사람들 담배 많이들 피우던데, 피우지 말라 그래도 피우더라구요 그러니 가급적이면 줄이기라도 해요. 술은 마시지 말구요. 처방전 받아서 약 타가고 두세시간 정도 압박 지혈 해 줘요.'

'으으..'

아파도 너무 아팠다. 생각했던 것보다 다섯 배는 더 아팠다. 이정도 아프면 민주주의를, 대한독립을 포기할만도 한 데 도대체 그때 그 사람들은 어떻게 버텼던 걸까..

초라하게 어기적거리며 나오는 발걸음. 얼얼한 입천장과 혓바닥. 못생긴 약국 아줌마와, 꾸물거리는 날씨. 거참 우울하다.


'페이스북 똥글 명작선' 카테고리의 다른 글

J에 관한 기억  (0) 2015.12.01
노잼 특선단편 바람의 딸 ㄹ혜  (0) 2015.12.01
탈조센 하던 날  (0) 2015.12.01
변명  (0) 2015.12.01
어느날 꾼 개꿈  (0) 2015.12.01
공지사항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
링크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글 보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