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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 도착한 시간은 대략 5시 반이었다. 우리의 목적은 저스티스의 공연이었기 때문에 8시쯤 맞춰 도착하기 위해 적절한 돈까스 복용 및 찻집에서의 여유로운 시간을 잠시 보내고 공연장으로 출발했다. 여유 시간을 두지 않고 셔틀버스를 타려 했으나 길게 늘어진 줄 때문에 'GG'를 치고 택시를 탔다. 하지만 우리와 비슷한 목적을 지닌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기에 택시 타기도 힘들었다. 역시 공연은 충분한 여유시간을 가지고 봐야 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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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으로는 잘 나와있지 않지만 상당히 길게 늘어진 줄 앞에서 당황한 필자. 순박한 시골 청년의 느낌이 난다.

 

 택시를 잡아 타는 과정도 그랬지만, 들어가는 과정도 순탄하지는 않았다. 한강시민공원으로 들어가는 좁은 길은 주차장이 되었고 공연 시간은 얼마 남지 않은 상황이었다. 우리는 과감하게 하차해 강변을 달렸다. 그때 너는 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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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만에 운동을 하다가 지쳐 쓰러진 모습. 쓰러졌다고 하기엔 다소 어색한 감이 있다.


 
 공연장에 도착하자 마자 티켓을 현장수령받았다. 사람이 많기에 시간이 걸리지는 않을까 걱정을 하긴 했지만 예상외로 쉬웠다. 받은 티켓은 바로 옆에서 팔찌로 교환하고 입구로 들어갔다. 물 한병의 예외를 두고 모든 음식물과 주류 일반은 반입 금지였기 때문에 가방 검사도 했다. 메인 스테이지를 중심으로 변두리에 각종 부스가 있었고 맥주나 와인 등을 팔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음식등은 입구 근처에서 팔았는데 돈이 없어서 한 번도 사먹지 못했다. 기억나는 음식은 탄두리치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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털보와 자비에르

 
 저스티스의 무대는 생각보다 신나지 않았다. 2년 전에 들었던 믹스셋의 형태 그대로였고, 음악을 틀던 도중 음악이 꺼진 적도 있었다. 반응이 제일 좋았던 것은 팬텀이나 댄스를 틀었던 순간뿐이었고 나조차도 설마 보이즈노이즈의 My head를 틀 줄은 몰랐다. 그냥 자비에르와 털보를 실물로 봤다는 데 만족해야 한다는 부분이 아쉬웠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위 아 유어 프렌드 '떼창'으로 무난하게 끝났다.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를 그냥 틀어놓고 하는척만 하는 것도 나름 괜찮을 듯 싶었다. 외국인들의 맹독성 암내를 참아온 인고의 세월이 원망스러웠다. 내 옆에서 놀던 아가씨도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내가 미친듯이 흔들고 놀다가 팔꿈치로 관자놀이를 좀 많이 때려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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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보다 더 신나게 놀던 쿸형.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었다.

 

 팻 보이 슬림의 무대는 나름 괜찮았다. 자기 곡도 적당하게 틀었고. 주종목인 빅비트와 일렉트로 하우스등을 적절하게 섞은 그야말로 '신나는' 무대를 선보였다. 내가 볼 때 이 때가 피크였던 듯싶다. 괜히 팻 보이 슬림이 헤드라이너 최상단에 뜬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음악 뿐만이 아니라 영상 부분에서도 센스있는 모습이 많이 보였다. 여튼 좋았다. 그리고 이때부터는 무대의 정면쪽이 아닌 측면쪽에서 놀았다. 저스티스 때 짜부가 되고 이리 치이고 저리 치였더니 겁도 나고 힘도 빠져 도통 혼돈의 카오스 속에서 맹독성 암내를 받아낼 용기가 없었다.

 예정대로라면 팻 보이 슬림의 공연이 12시에 끝났어야 했다. 하지만 시작부터 약간 늦었고, 중간중간 광고도 하다보니 1시에 끝나게 되었다. 목도 마르고 배도 고팠다. 미지근한 맥주를 사서 마시는건 고문이었다. 기왕 돈 내고 산거다 보니 안마실수도 없고, 그대로 마시자니 괴로운 상황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물이나 음료수 등을 대놓고 왕창 들여올 수도 없었고 근처 편의점의 줄은 삼백미터 정도 되는 상황이었다. 나와 동행한 필진은 음료수를 사러 가서 한 시간 뒤에 돌아왔다. 먹을 것도, 마실것도 구하기 힘든 축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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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이 기가 전해져 옴을 느끼고 있을때, 난 매우 화가 나 있었다.

 

 끝나고 생각해보니 더욱 괘씸했다. 헤드라이너 공연을 미끼로 표나 팔아먹으면 장땡이라는 심보같이 느껴진다. 글로벌개더링 운영진은 하루 일과를 끝마치고 미지근한 맥주를 마셔야 한다. 사람들이 물건을 필요로 할 때 그것을 팔게 되면 돈을 버는 사람이나 쓰는 사람이나 모두 기분 좋은 일이 될 것이란게 당연지사이거늘, 도대체 누구의 이익을 위해 미지근한 맥주를 파는 것인지 모르겠다. 아니면 아싸리 샷잔에 담긴 양주를 파는 곳이라도 있었으면 좋았을 것이라 본다. 캔맥주 하나에 3000원이면 그리 나쁘진 않은 가격이므로, 조금만 더 시원했다면 5개는 사먹었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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왠지 머리 어딘가가 휑해진 느낌이 드는 아민형.

 

 아민 반 뷰렌의 무대는 개인적으로 그저 그랬다. 나는 몽환적인 업리프팅 트랜스를 바랐는데, 초반에는 프로그레시브 하우스로 시작하고 점점 bpm을 올려 나가다가 그냥 끝난 느낌이다. 뭐 체력이 빠져서 힘겹게 놀기도 했지만 그냥 손 흔들고 박수치던(그것도 시켜서) 기억밖에 나지 않는다.

 마지막에는 로컬 디제이의 무대가 있었는데 정말 너무 피곤해서 동행과 함께 집에 가자는 의견을 모았다. 듣기로는 앞에서 시간이 자꾸 밀려 본인의 공연을 30분밖에 못했다는 이야기가 들리던데 안타깝다. 맨바닥에 누울 수 있을 정도로 깨끗하던 바닥은 사라지고 수많은 노숙인들과 뒹구는 쓰레기는 생지옥을 빚어냈다. 우리는 일단 식사를 해야 할 것 같다는 것을 마음 속 깊은 곳에서부터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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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을 걸 원하지만 먹을 게 없자 쓰레기를 탐하는 필자의 한컷.


 
 공연장에서 바로 나와 왼쪽으로 쭉 가서 무지막지한 계단을 올라 계속 나아가니 월드컵 경기장이 보였다. 24시간동안 여는 홈플러스에서 빵이라도 사먹자니 왠지 억울해 월드컵 경기장을 좌측으로 끼고 계속 앞으로 나가다 보니 이명박도 왔다간 순대국집이 보였다. 순대국밥 두 개와 왕만두 하나, 그리고 소주 두 병은 주린 배를 채워 주었지만, 발걸음을 더욱 지치게 만들어 결국 우리는 월드컵 경기장 내에 있는 사우나에서 일박을 하기로 결정했다. 우리같은 생각을 한 사람이 한둘이 아닌듯, 찜질방도 가히 생지옥이었다. 나는 가뭄의 논처럼 쫙쫙 갈라진 베게를 간신히 하나 구했고, 나와 함께한 필진은 부둥켜 안은 커플의 베개를 하나 슬쩍 했다.

 눈을 떴을때는 오후 3시였다. 점심때쯤 일어나 그럴싸한 점심을 먹고 서울 나들이나 좀 하다가 저녁쯤에 내려가자는 계획이 있었으나, 담배나 피우고 빈둥거리다 보니 금새 해가 졌다. 저녁을 먹고 청주로 돌아왔을 때는 밤 9시였다.

 먹을 것도, 마실 것도, 놀 거리도 아쉬웠다. 아까 말했듯이, 솔직하게 보면 헤드라이너만 믿고 표만 팔면 그만이라는 느낌이었다. 한강시민공원 근처의 미니스톱 사장님만 제일 기분이 좋았을 것이다. 아쉬웠던 부분 중에서도 요점은 수요를 공급이 따라가지 못한 점이었다. 가격대 성능비는 원하지 않지만 까마득한 줄을 기다리는 동안 포기해야 할 공연이 너무 많았다. 어짜피 망할 공연이라고 생각해서 그랬다면 음식물 반입이나 좀 자유롭게 해줬으면 좀 좋았을까 싶다. 애석히도 이를 곧이 곧대로 믿고 맨몸으로 들어간 나도 한심하다. 공연장 바닥에는 빈 소주병과 과자 봉지등만 나뒹굴었으니……. 그래도 국내 페스티벌 치고는 상당한 인원이 참가했기에 만약 다음이 있다면 좀 더 발전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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