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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블로그/생활

내가 피워본 담배들

프로매국노 2011. 5. 1. 19:41

 담배를 피우기 시작한지 대략 6-7년 정도 된 것 같다. 솔직히 처음엔 멋있어 보였다. 약간 인상을 찌푸리며 담배 연기를 훅 내뱉는 나의 모습. 어릴 적에는 그리도 멋을 몰랐다. 뭐가 좋다고 돈과 건강을 바쳐가며 그렇게 담배를 피워댔는지. 끊고 싶은 생각이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나중에는 왠지 슬퍼질 것 같다. 남들 눈치나 보며 구석진 곳에서 혼자 찔끔 찔끔 담배를 빠는 나의 모습이 상상된다. 그래도 좋다. 흡연자에게 담배를 피우는 시간만큼 편안하고 차분해지는 순간은 없다.

 편의점에 가서 처음으로 말보로 레드를 한 갑 사 피웠을 때의 감격은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지금은 던힐을 피운다. 하지만 그전에는 나름 이것저것 안 피워본 담배가 없다고 생각한다. 언젠가 내가 피웠던 담배들을 모조리 정리한 글을 한번 써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오늘이 그 날인가 보다. 지극히 주관적이므로 참고만 하길 바란다.

1. 말보로

 말보로의 특징을 꼽자면 고소한 맛이다. 특히 말보로 라이트를 좋아한다. 말보로 레드같은 경우에는 연기의 매운 맛이 약간 난다. 그리고 독하다. 세븐스타같은 담배는 보통 담배보다 배는 독하지만 이렇게 독한 맛은 나지 않는다. 말보로의 예를 보았을 때 같은 담배는 독한 정도에 따라 종류가 갈려도 맛은 어느 정도 비슷하다고 본다. 말보로멘솔을 좋아한다. 내가 멘솔 담배를 구분할 때 기준으로 삼는다.

2. 던힐

 던힐을 피운지 3년 정도 된 것 같다. 사실 이 이전에는 던힐을 담배 취급도 안했다. 여타 담배와 비교해 볼 때 쓰레기 맛이 난달까. 마치 플라스틱에 불을 붙여 빠는 느낌이었다. 던힐을 피우기 전에는 말보로를 피웠다. 그런데 어느 날 길을 걷다가 반쯤 피운 던힐을 한 갑 줍게 되었다. 이때 몇 년 만에 던힐을 다시 피우게 되었는데 예전의 기억과는 달리 부드럽고 고소한 맛이 났다. 게다가 적당히 독하다. 이후로 계속 던힐을 피우게 되었다. 여담으로 2009년 한정판으로 나왔던 ‘던힐 미드나이트’를 굉장히 좋아했다. 아크로얄 파라다이스에서 느꼈던 미미한 홍차 향이 났다. 나만 그랬는지는 몰라도 그 한정판 담배가 너무 좋아서 보루로 사다가 하루에 두 갑씩 피웠던 기억이 난다. 멘솔은 별로다.

3. 마일드세븐

 마일드 세븐의 특징을 꼽아보자면 굉장히 잘 빨린다는 점이다. 친구들과 담배 빨리 피우기 내기 같은 걸 할 때 항상 금지되는 담배는 마일드세븐이었다. 요새 마일드세븐을 피워보면 구수한 맛은 있으나 씁쓸한 맛이 좀 더 느껴지고 목 넘김도 조금 까칠한 느낌이 든다. 비교적 최근에 나온 LSS는 의도는 좋으나 맛이 너무 느끼해서 별로다.

4. 버지니아 슬림

 얇은 담배. 고전 게임인 ‘노노무라 병원’의 간호사가 피우던 담배다. 단지 그뿐이다. 그런 이유로 구입을 했고 후회했다. 담배에서 중요한 것은 맛과 목 넘김이라고 생각한다. 아무것도 충족되지 않는다.

5. 라크

 이 담배를 사서 피워본 적은 없지만 근처에 이 담배를 주로 피우는 사람이 있어서 자주 얻어 피우게 되었다. 놀라운 점은 1미리 담배임에도 불구하고 맛이 괜찮다는 점이다. 시중에서 판매되는 1미리 담배는 많지만 대부분 싱거운 맛이 난다. 그렇기에 흡연자에게 상실감을 가져다주고 재떨이에는 빈 꽁초만 늘어나는 게 다반사다. 1미리 말고도 다양한 종류로 나왔으면 좋았을 걸.

6. 팔리아멘트

 독특하게 생긴 필터로 유명한 담배다. 고소한 맛이 일품이다. 필터를 손으로 계속 만져 뒤로 빼면 한 단계 높은 맛이 난다는 전설이 있다. 하지만 난 전설 따윈 믿지 않는다. 여담으로 내가 알고 지내던 양아치 형이 중학교 다닐 때 피시방만 가면 팔리아멘트를 네 갑씩 피웠다고 한다.

7. 레종

 레종 블루의 부드러운 맛은 국산 담배 중 최강이다. 담배의 맛 또한 3미리의 한도 내에서 적정하게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아버지께서 피우시는 담배다. 담배가 없을 때 가끔 몰래 피우기도 한다. 레종 블루는 나름 잘 나가는데 반해 블랙이나 레드는 형편없다. 예전에 길을 걷다 한 가치 피운 레종 블랙을 주운 적이 있다. 한 가치를 피워보고는 다시 버렸다. 버린 사람의 마음이 이해됐다. 비린 맛이 났고 별 특징 없었다.

8. 디스플러스

 ‘2100원’이라는 가격이 매력인 담배다. 구수한 맛은 있으나 역시 목 넘김이 좀 불편한 느낌이다. 소문으로는 바닐라향이라는 이야기도 있으나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얼마 전 디자인이 바뀌었지만 개인적으로는 예전의 디자인이 더 맘에 든다.

9. 타임

 타임 라이트는 레종 블루와 같은 맥락이다. 부드러운 맛이다. 나는 돈이 없을 때 ‘타임리스 타임’을 피운다. 국산담배 중에서 그나마 내가 원하는 맛이 난다. 역시 저렴한 가격이 메리트.

10. 도라지연

 지금은 아마 절판된 것으로 보인다. 편의점에서 보이질 않는다. 이 담배만의 독특한 향이 있는데 이것은 피워보지 않으면 모른다. 굉장히 마이너한 담배였지만 나름 매니아층이 있던 것으로 기억한다.

11. 88

 저렴한 가격의 극을 치닫는 담배다. 재작년, 나의 근처에는 88을 피우는 친구가 있었다. 극심한 생활고와 독한 담배에 대한 사랑으로 88을 택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기억이 난다. 꽤나 독한 편이다. 그리고 국산 담배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이유 중 하나가 ‘시큼한 맛’이다. 독한 건 좋은데 시큼하고 목 넘김이 힘들다. 그리고 88디럭스였나? 예전에 당구장 알바를 하다가 우연히 주운 담배가 있었는데 한 대 피워보고 그대로 버렸다. 형용할 수 없을 만큼 구린 맛이었다.

12. 시즌

 이름과 디자인 하나는 정말 끝내준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순한데다 별 맛이 없는 담배다. 예전에 시즌을 피우는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의 친구들이 술에 취해 담배를 쓰레기통에 버리고 몰매를 때렸던 기억이 난다. 그걸 구경하기만 했던 나도 참 나쁜 놈이다. 용기 없는 자의 비겁한 변명이랄까.

13. 에쎄

 아저씨들이 많이 피우는 담배다. 원래는 여성용으로 나왔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도대체 왜 아저씨들이 그리 많이 피우는지는 모르겠다. 잘 빨리지도 않을뿐더러 맛도 별로다. 시큼하고 밍밍하고 목 넘김도 별로다. 주워도 안 피운다.

14. 보헴시가

 보헴시가가 처음 나왔을 때는 나름 괜찮았다. 나는 1미리의 향을 굉장히 좋아했다. 맛 자체는 거의 없다시피 했지만 향으로 피웠다. 6미리는 비교적 맛이 있으나 느끼한 감이 있다.

15. 심플

 길을 걷다가 우연히 새것을 한 갑 주웠다. 한 대 피워보고 버리려 했지만 만일의 사태를 위해 남겨두었다. 이는 게임을 할 때 도움이 되었다. 한 대 피울 때마다 불쾌해졌지만 게임을 하느라 담배 사러 나가기가 너무 귀찮아서 어쩔 수 없이 피웠던 기억이 난다.

16. 살렘

 처음 피웠을 때는 ‘쿨부스터의 위용에 다가서는 담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하지만 이는 망상으로 끝나버렸다. 진한 멘솔향이 인상적이나 느끼한 감이 있던 것으로 기억한다.

17. 럭키스트라이크

 누룽지 맛 담배로 유명하다. 럭키스트라이크 특유의 구수한 향은 독보적인 영역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보통 국내에 면세품이 많이 들어오는데 면세품보다는 일본내수용 물건이 더 맛이 좋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참고로 독하다. 12미리정도였나?

18. 세븐스타

 한때 즐겨 피웠던 일본담배다. 상당히 독하다. 14미리정도. 하지만 목 넘김이 굉장히 부드럽고 독한 느낌이 거의 들지 않는다. 면세품으로만 피웠었고 남대문 지하상가에서 주로 구입했던 기억이 난다. 삼촌네는 아직도 있으려나.

19. 쿨부스터

 개인적으로 쿨부스터를 멘솔담배류 甲으로 여긴다. 그냥 피워도 시원한데 필터 속에 있는 구슬을 터트리면 멘솔의 포풍 속으로 휩쓸려 들어가 버린다. 단점이 있다면 가격이 비싸다는 것. 일본 내수용 물건만 있다 보니 3년 전 쯤에 한 갑당 오천원에 구입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20. 블랙데빌

 쿨부스터가 멘솔류 甲이라면 블랙데빌은 향 담배류 甲이다. 내가 처음 블랙데빌을 접할 때는 어둠의 경로를 통해서만 구입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편의점에서도 종종 보인다. 한 갑에 4000원이라는 가격의 압박이 있지만 헤이즐넛 향은 4000원 어치를 충분히 한다. 반면 초콜릿 향은 필터만 달달하고 장미향은 너무 느끼하다.

21. 블랙스톤

 길쭉한 외형, 시가의 멋을 갖춘 담배다. 이 또한 블랙데빌과 같이 요새는 쉽게 구할 수 있다. 바닐라와 체리의 두 가지 맛이 있던 것으로 기억한다. 목표로 하는 향은 적당히 났지만 굉장히 독했다. 겉 담배용이지만 가끔 가오를 잡으려 속 담배를 피웠다고 하는 사람을 종종 본다. 시가 특유의 향과 국내에선 희귀한 매력이 있지만 별로 좋은 담배같지는 않다.

22. 아크로얄

 초콜릿 향의 아크로얄 스위트, 아크로얄 애플민트, 홍차향의 아크로얄 파라다이스의 세 가지 담배를 피워 보았다. 스위트는 필터가 달달하지만 플라스틱에 불 붙여 빠는 듯한 단점이 있다. 초콜릿 향 담배로는 나름 유명하지만 인공적인 맛으로도 유명하다. 애플민트는 담배의 맛과 애플민트 향이 조화롭지가 않다. 비유를 해보자면 육개장에 오렌지 쥬스를 탄 맛이다. 파라다이스의 경우 맛은 보통이었지만 향은 나름 괜찮았다. 하지만 당시 한 갑에 오천원이어서 자주 피우지는 못했다.

22. 하바탐파 쥬웰스

 중지만한 굵기에 나무 필터가 달려있는 시가다. 나무 필터는 달달한 맛이 나고 향이 나름 괜찮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문제는 역시 가격. 한 개피 당 이천원 가량 했던 것으로 기억난다. 이것도 요새는 편의점에서 자주 보인다.

23. 소브라니

 세 가지 종류가 있던 것으로 기억한다. 검은색과 흰색은 적당히 구린 맛이었다. 씁쓸하고 텁텁한 맛이랄까. 수입 담배를 외국 사이트를 통해 자주 피우던 당시 소브라니의 칼라풀한 담배는 꽤 유명했다. 하지만 크래파스 맛이 난다는 단점이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나름 맛있게 피웠다.

24. 필

 필도 몇몇 종류가 있지만 필 메론만이 독보적이다. 레종블루를 연상시키는 부드러운 맛과 은은한 메론 향이 일품이다.

25. DJMIX

 사과향, 딸기향, 레몬향이 있던 것으로 기억한다. 향은 그저 그랬고 거의 다 멘솔이었다.

 일일이 적어보니 생각보다 꽤 많다. 적지 않은 것도 많은데, 기억이 너무 흐릿한데다 담배의 특성상 이야깃거리가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그중에는 비교적 유명한 호프나 윈스턴 같은 담배도 있고 이름도 모르는 중국 담배, 국적의 차이로 인해 같은 이름을 지녔으나 다른 맛을 내는 담배도 있다. 여러 가지 담배를 피우게 된 이유는 단순했다. 내가 진정 원하는 맛이란 어떤 것일까에 대한 궁금증이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담배를 오래 피우면서 맛에 대한 기준은 점점 무뎌졌다.

 지금은 그저 어느 정도 수준을 지키기만 하면 구하기 쉽거나 저렴한 담배가 제일이라고 여긴다. 담배를 오래 피우게 되다 보면 미각이나 후각의 기능이 쇠퇴한다던데, 그런 이유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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