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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마이애미 비치

마이애미 비치 (4)

프로매국노 2013. 5. 1. 21:14

 우리는 여느 때와 같이 가끔은 다투고, 때로는 미칠 듯이 서로를 갈구하며 지냈다. 중요한 모의고사가 눈 앞이었지만 그것보단 유원지나 영화관에 가는 것이 더 중요했고, 그녀의 손을 잡은 채 언젠가 우리는 어떻게 되어 있을지 상상해 보는 게 더 좋았던 시절이었다. 사실 공부를 그렇게 잘 하는 편도 아니었고, 그녀의 경우는 전문대도 턱걸이로 들어갈 수준이었다. 가끔 시험을 보고 우울해하는 선미 앞에서, 나는 널 어떻게든 먹여 살릴테니 밥하고 빨래나 잘 해달라며 허풍을 떨곤 했다. 그땐 정말 그렇게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녀를 위해선 섬노예 생활도 견딜 것 같았고, 하다못해 사지를 자른뒤 서커스를 하라고 해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고추만 떼지 않는다면, 정말 난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난 이별이라는 것이 그렇게 갑작스럽고 간단하게 찾아올 줄은 몰랐다. 어느날부터 날 보며 조금씩 빛이 바래기 시작하던 선미의 시선……. 나는 지금도 그 시선을 잊지 못한다. 말을 걸어도 시큰둥했고, 이야기를 하자고 해도 나를 피했다. 그녀에게 무슨 문제가 있는걸까?, 아니면 혹시 그녀의 마음이 나에게서 떠나버린 것이라면, 그냥 그렇다고 말이라도 좀 해 주면 안되는 것이었을까? 지나치게 가까운 사이의 치명적인 문제는, 언제든 다른 사람 이상의 무언가를 받지 못하는 순간, 조금씩, 확실하게 틀어진다는 점에 있었다. 나 또한 나 자신에게 놀랐다. 처음 얼마간 그녀에게 구애하던 시절과, 그녀를 위해 희생하겠다던 마음을 지녔던 시절이 있었는데, 이제와 볼 재미 다 보니 '그냥 네 멋대로 해라. 좆까라 마이싱이다.' 라며 더이상 그녀의 손을 잡아주고 싶지 않은 마음이 더욱 강해진 것이다. 어느 한 순간에, 차라리 몰랐으면 더욱 편했을 만큼 불편한 관계가 되어버린 것이다. 조급한 마음에 그녀를 의심해봐도, 예를 들어 나랑 신나게 섹스할 땐 언제고 자기도 볼 재미 다 보니 이젠 내가 지겨워져서, 딴놈을 자기 집에 불러 신나게 섹스를 하는 것이 아닐까 싶은 생각을 해 봐도, 괴로운건 오직 나뿐이었다. 너무나 그럴 법 했으니까. 그만큼 누구에게나 예쁜 여자였으니까. 그런 상상을 할때마다 나는 바늘을 촘촘히 박은 침대 위에 누운 기분이 들어,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곤 했다. 


 그렇게 일주일이 흘렀고, 난 이별을 통보 받았다. 그냥 예전처럼, 좋은 친구로 남고 싶다고 했다. 이유라도 물어보고 싶었지만 구차해보일까봐 참았다. 그때부터였다. 소변을 볼 때마다 고추가 욱신거리기 시작했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 삼일이 되면서 그 통증은 점점 심해졌고, 어느날은 팬티에 노란 고름이 묻어있곤 했다. 네이버에 검색을 해보니 난 요도염에 걸린 것 같았다. 성병이었다. 남녀가 섹스를 하며 전염되는, 그런 병이었다. 하, 그러니까, 그 여자의 그곳에 어떤 병든 자지가 존나게 들어갔다가 나오길 반복했고, 또 그곳에 내 깨끗하고 탐스러운 고추가 후발 주자로 들어갔다가 병에 걸렸다고? 이게 무슨 소리야! 내가 성병이라니! 내가, 내가 성병이라니! 이별의 고통이 채 가시기도 전에 나는 이를 박박 갈며 비뇨기과를 찾았다. 작고 쳐진 눈에 백발이 무성한 의사 선생님은 그 은색 무테 안경을 이용해, 남자의 생김새만으로 그의 귀두 모양과 색상, 사이즈를 맞출 수 있을 것 같았다. 


"한번 봐봐요. 짜면 고름 나와요?"

"네? 아니, 그 정도는 아닌 것 같은데요."

"짜 봐요."

"나오네요."

"최근에 사창가에 간 적 있어요?"

"선생님, 저 학생입니다." 

"으이구….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

"약 처방 해줄 테니까, 오늘은 주사 한번 맞고, 일주일 있다가 다시 와요. 어디서 옮았는지 알아 보고."  

 

 도대체 나에겐 무슨 일이 있던 걸까? 그년의 성병은 어디에서 옮아온 걸까? 아니, 뭘 도대체 어떻게 하면 성병에 걸리는 거지? 그래서 그런 냄새가 났던건가? 원래는 그렇지도 않은 거였나? 그럼 날 만나기 전에 얼마나 많은 놈들이랑 그렇고 그런 일들을 해 왔던걸까? 응? 그러다가 어떤 팔뚝에 문신이나 한 양아치 새끼의 허세에 반해 그 놈의 병든 고추를 대음순으로 덥썩 물었던 걸까? 그녀를 불러다 청문회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난 전두환을 대하는 노무현이 될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그러기엔 지난 세월이 너무 아름다웠다. 그때 선미가 날 보던 그 빛나던 눈빛이, 금방이라도 울 것같은 슬픈 표정으로 변해버린다면, 그래도 내 가슴이 아프다면, 난 도대체 뭐지? 난 정말 병신인건가? 그래, 나같은 병신도 이 세상에 없지. 모든 걸 다 바칠 기세로 달려드는 불나방 같은, 그런 병신도 없지. 그러면서도 다음엔 이런 사랑을 하지 말아야지, 사랑을 믿지 말아야지 하는 마음을 키워갔다. 내 아름다울 수 있었던 고등학교 3학년 1학기는 그렇게 지나갔다. 그때 느낀 감정들을 한데 모아 원기옥을 만들었다면, 마인부우를 포함한 이 우주 따위는 한 큐에 보내버렸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여름 방학이 끝나갈 무렵 선미가 학교를 자퇴했다는 소문을 들었다. 왠 대학생같은 남자의 손을 잡고 학교에 나타나 빠르게 자퇴 수속을 마치고 사라졌단다. 아마 그놈의 애라도 뱃겠지. 그런 생각을 하며 아버지께서 소중히 보관하시던, 파란 스티커가 붙어있고 길쭉한 사각 병에 담긴 양주를 반 정도 마셨다. 그리고 잘 기억은 안나지만, 저녁에 집에 들어오신 아버지께 뭐하다 이제 왔냐며 하이파이브를 청했다가 술이 깰 때까지 두들겨 맞았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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