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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마이애미 비치

마이애미 비치 (5)

프로매국노 2013. 5. 2. 17:08

 그 일이 있은 후, 난 완전히 삶의 의욕을 잃었다. 그나마 나의 가슴속에 미미하게 남아 있던 불꽃 하나는 그저 비참함이었다. 난 비참했다. 벼락을 맞은 듯이 사랑을 잃고 성병까지 걸려버렸다. 물론 성병은 보름 만에 완치되었지만 사랑을 잃은 것은 그렇지 못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이제 선미 같은 애는 어떻게 되든 좋았다. 이제 나와는 아무 상관 없으니까. 그런데 계절이 바뀔 때마다, 그녀와 함께 걷던 길을 걸을 때마다 문득 드는 생각에 씁쓸하면서도 속이 아련해 오는 것은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그게 날 힘들게 했고, 나를 더욱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남은 여름과 가을, 그리고 초겨울 내내 한 일은, 자장면 배달 하는 친구를 따라 밤에 오토바이를 타고, 주유소에서 기름 넣는 친구와 놀며 고구마를 구워 먹다가 담배를 배운 것 뿐이었다. 결국 난 그해 십이월, 함박눈이 펑펑 내리는 날에 아버지께 왼쪽 뺨을 맞고 오른쪽을 어머니께 내밀었으나 왼쪽 뺨을 한번 더 맞은 후 재수학원으로 끌려갔다. 


 학원을 다니며, 나는 정말 많은 생각을 했다. 대학교에 대해, 여자에 대해, 섹스에 대해, 여자와의 섹스에 대해, 오럴 섹스에 대해, 성교에 대해, 짝짓기에 대해, 운우지정에 대해 등등. 그럴때마다 나는 다시금 내 마음 속 어딘가에서 잠자던, 북쪽 어디에서 은밀하게 연성되고 있는 핵폭탄같은 정열의 존재를 느끼게 되었다. '안선생님, 저 섹스가 하고 싶어요….' 섹스 좋아하냐는 물음에 대답도 안하고 바지부터 벗을 강백호가 아닌, 섹스때문에 방황했던 정대만이 그곳에 있었다. '그래, 기왕지사 이렇게 된 거, 내 불알의 정자가 마르고 귀두 끝이 닳도록 섹스나 열심히 해봐야겠다. 혹시 모르잖아. 그 끝에 내가 잃어버린 무언가가 있을지도 모르잖아. 아니, 난 다시는 그런 걸 믿지 않겠다고 결심했었지. 그러니까 그냥 섹스만 하자. 그 여자가 무슨 표정을 짓던, 내가 걔랑 어떻고 어떤 관계가 되건 상관하지 말자. 그냥 순간 순간에 충실하며 살자.'고 생각하며 하루에 한번씩은 꼭 자위를 했다. 


 그래서일까, 언제부턴가 난 괴로워하던 시간이 조금씩 줄어들기 시작했고, 언젠가는 선미와 함께 걷던 길이나, 선미와 함께 무언가를 했던 일들도 정말 먼 옛날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때 그 기억들은 그냥 그곳에 두고 온 느낌이었달까. 이렇게 상처도 아물어 가는구나 싶었다. 정말 그땐, 내가 이렇게 성적으로 망가진 인간이 되어 버렸을 줄은 몰랐다. 그것을 알게 된 계기는 또다시 찾아온 스무살의 봄이었다. 


 당시 학원에 나와 친한 여자 아이가 한명 있었다. 효진이라는 이름을 가진 아이였는데, 희고 유난히 깡마른 몸매에 살짝 퀭한 눈을 가진 아이였다. 그런데 이 요사스러운 것이 화장을 얼마나 잘 하는지, 맨 얼굴로 다닐 때는 아는 척 하기도 부끄럽게 느껴질 게, 화장만 했다 하면 무슨 버디버디 시절 얼짱처럼 화사하게 변하는 것이었다. 처음엔 그 신비로움이 좋았다. 정확히는 그런 호기심에 친해지고 싶었다고 할 수 있겠다. 그 친구와 나는 서로를 '짝꿍'이라고 불렀다. 


 모의고사를 치룬 목요일이었다. 보통 모의고사를 치룬 뒤엔 친구들과 플스방에 모여 축구 게임을 한판씩 하고 떡볶이를 사먹곤 했는데, 그날따라 유난히 놀고 싶지가 않았다. 그냥 집으로 돌아가기엔 왠지 아쉬운, 여유로움을 조용한 사색으로 치환하고 싶던 오후였다. 아무도 없을 줄 알았던 학원 강의실의 문을 열어보니 담요를 뒤집어쓴 누군가가 물레를 빼앗긴 간디처럼 청승맞게 훌쩍이고 있었다. 내 옆자리에 있는 걸 보니 '아마도 효진이가 아닐까'하는 생각을 해 보며 난 아무렇지 않은 듯 내 자리로 가서 앉았다. 내가 들어온 것을 본 효진이는 더듬더듬 이야기를 시작했다. 남자친구가 바람이 났단다. 누군가 와주길 바랬던 것처럼, 나는 이랬고, 걔는 그랬고, 나는 이런걸 바랬는데, 걔는 그러지 못하더라, 그래도 꾹 참고 걔를 만났는데도, 걔는 그렇게 밖에 못하더라는, 참 남 입장에서 보면 우습기 그지없는 이야기들을 터진 쌀자루처럼 쏟아냈다. 난 이러다 어떻게 뭐 그런거, 좋은 거라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은 마음에 그녀를 천천히 달래주고 언제 술이나 한잔 사주겠다는 이야기를 하며 영어 단어책을 가방에 넣고 있었다. 그리고 일어서서 나가려는데 그녀가 내 팔을 붙들었다. 


"언제 말고 오늘이면 안될까?"


 가끔, 무슨 일을 앞둔 상황에선, 아 이러다 정말 낙타 성기같은 일이 벌어지겠구나 싶은 느낌이 올 때가 있다. 인생을 살다 보면 그런 느낌에 좀 더 익숙해져야 하고, 좀 더 예민해져야 할 필요가 있다. 나는 분명 얘가 술에 취해 사고라도 칠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나도 모르게 측은한 마음에 효진이를 데리고 근처 고깃집에 가서 시원한 참이슬 한 병과 항정살 2인분을 시켰다. 그리고 항정살이 나오기도 전에 소주 한 병을 비우고, 항정살이 익는 동안에 또다시 소주 한 병을 비우고, 항정살이 익은 뒤에 소주 한 병을 비우고, 더이상 먹을 것도 없는 상황에서 물과 함께 소주 한 병을 비웠다. 그 옛날의, 소주를 궤짝으로 마셨다던 우리 아버지 세대의 주당들이면 모를까, 평범한 남학생과 여학생이 소주를 각각 두 병씩 비운다는건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나는 술에 취해 뻗은 효진이를 업고 근처 카페에 들어가 '실례지만 지금 이곳이 어딘가요? 네? 한국이라구요? 아니 그러니까 한국 어디죠? 서울? 노원구? 무슨동이죠? 지하철 역으로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와같은 영업 방해에 가까운 짓거리를 하다가 결국 근처 노래방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리고 노래도 안부른 채 짧은 잠을 자고, '아니 학생들이 이른 저녁부터 술에 취해서 이러면 어떡해'라며 혀를 차는 노래방 주인에게 깨워져 다시 효진이를 업고 가다가 끌고 가다가 이번에는 DVD방에 들어가서 옷을 모두 벗고 누워있었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되었다. 그녀가 내 불알을 주무르기 시작한 것이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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