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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마이애미 비치

마이애미 비치 (6)

프로매국노 2013. 5. 2. 19:04

 '도대체 이게 무슨 시츄에이션?'이라는 느낌이 뇌에서 다듬어지기 이전에 나는 재빠르게 그녀를 위에서 안고 키스를 하기 시작했다. 딱딱한 고추가 그녀의 허벅지를 눌렀다. 그녀는 살짝 웃었고, 나의 혓바닥은 원숙한 복서처럼 그녀의  입속 이곳 저곳을 찔러대고 있었다. '내가 얘랑 지금 뭘 하는 걸까?'하는 생각이 명확해질 때는 이미 신나게 방아를 찧던 순간이었다. 살과 살이 맞닿는 소리는 총소리와 어우러져, 총격전이 벌어지는 시가지의 간이 화장실에서 섹스를 하는 젊은 커플이 된 기분이 들었다. 딱 그런 느낌으로, 나는 그녀의 허리를 꼬옥 잡고 내일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단 한번의 사정을 하겠다는 기세로 정점에 다다르고 있었다. 격정을 느끼고 있는 그녀가 리듬에 맞춰 앵무새같은 신음을 냈고, 나는 하반신이 뜨겁게 조여오는 느낌을 받으며 소리를 질렀다. 


"이 씨빨년아!"


 나는 효진이의 머리채를 쥐고 입에 핫바 같은 것을 구겨넣은 다음에 희고 비릿한 탕수육 소스 같은 것을 꿀렁꿀렁 뱉어냈다. 갑작스러운 나의 행동에 놀란 그녀는 기침을 했고, 그녀의 코에선 정액이 흘러나왔다. 나는 그 진귀한 광경에 그만 실소를 뿜어버렸다. '촤하하하.' 적어도 그렇게까지 해서는 안되는 것이었다. 그 순간 나를 보던 그녀의 눈빛은 크리스마스 선물로 양말 두 켤레를 선물받은 어린아이처럼 차갑게 식어 버렸다. 그리고 그 어린아이의 눈빛은 어른이 되어 그런 부모때문에 범죄자가 될 수밖에 없었다고 고백하는 듯이 변해갔다. 그녀는 휴지로 입과 코와 그곳을 몇번 닦은 뒤에 옷을 입고 아무 말도 없이 나가버렸다. 총격전은 끝났다. 주인공은 여주인공과 감격의 키스를 나누고 있었고, 나는 멍하게 담배를 피우며 영화가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도대체 난 뭘 한 걸까. 그러니까, 그 격정의 순간에 왜 화가 난 걸까. 무엇에 화가 난 걸까. 옛날 일 때문인걸까. 아무래도 그런 것 같긴 한데, 그게 그렇게 큰 상처였던걸까. 하긴, 지금도 난 사랑을 믿지 않지. 어쩜 잘 된 건지도 몰라. 걔랑 잘 되어봐야 또 귀찮아지기만 할테니까. 결국 난 푸세식 화장실에서 갓 퍼올린 것처럼 구질구질한 합리화를 마치고 DVD방을 나왔다. 분명 작년에도 느꼈던 신비로운 향취를 품은 봄의 밤이건만, 똥을 싸고 안 닦은 뒤 침대에 들어가 잠을 청한 기분이었다.  


 다음날부터 그녀는 학원에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다신 볼 수 없었다. 듣기로는 얼마 전에 새로 생긴 학원으로 옮겼다나 뭐라나. 약간은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나조차도 어쩔 수 없었던 충동적인 사고였다고 생각하니 조금 덜 미안해졌다. 계속 보며 어색하게 지내느니 차라리 그 편이 나았다는 생각도 들었다. 문득 그녀에게 고마워졌다. 그러고보니 그 전에 담배 산다길래 빌려준 만원을 돌려받지 못한 것 같다. 그정도는 뭐, 옛 정을 생각해 그냥 주면 그만이지 라는 생각으로 담배를 한대 피우고 나는 다시 책을 폈다. 

 

 모든 것을 잊은채, 난 공부에 전념했다. 정말 밥먹고 똥 싸는 시간을 제외하곤 공부만 했던 것 같다. 실제로 공부가 재미있기도 했다. 알쏭달쏭한 수학 문제를 한시간동안 고민하다 풀어낸 그 성취감, 하루에 몇개씩 외우던 영단어들이 어느새 하나둘 머리속에 박혀 보다 수월하게 독해가 되던 순간들, 하루에 한시간씩 달달 외우던 세계의 역사들로 수많은 나날을 채워갔다. 덕분에 6월 모의고사와 9월 모의고사는 연이은 상한가를 쳤다. 난 어느 순간, 어떤 경지에 다다른 도인처럼 고요하게 남은 시간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아침 저녁으로 찬바람이 불어 오기 시작하더니 낙엽이 떨어지고 첫눈이 내렸다. 난 11월을 맞이했다. 그리고 시원하게 수능을 망쳤다. 평소 실력보다 한 등급씩 낮은 점수가 나왔다. 아버지와 소주를 마시며 죄송하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왼쪽 뺨을 내밀었으나, 아버지께선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다. 오뎅탕보다 뜨거운 눈물이 흘렀다. 그리고 약간의 시간이 지났다. 불행 중 다행으로, 나는 예상했던 것보다 좋은 대학의 후진 학과로 입학하게 되었다. OT가 있던 날은 북한의 빈부격차마냥 이상하게 더웠던 2월이었다. 


 그날 나는 정말 닳도록 입어서 반질반질한 노스페이스 바람막이와 빨간색 아디다스 삼선 츄리닝 바지를 입고, 외할머니의 환갑 잔치를 기념하는 수건과 칫솔과 죽염 치약과 우유로 만들었다는 비누를 가방에 집어 넣은 뒤 갱스터라도 된 것처럼 어슬렁거리면서 학교로 갔다. 모이기로 한 장소엔 담배를 뻑뻑 피우며 무슨 방송사의 대단한 PD라도 된 것처럼 지휘를 하고있던 남자선배들과 그래봐야 한두살 많을텐데 신경질적인 엄마처럼 아이들을 부리고 있던 여자 선배들과, 그들에게 치여 소주나 과자, 고기등을 일개미의 탈을 쓴 굼벵이처럼 나르던 '나는 지금 어디서 뭘 하고 있는 걸까.'라는 눈빛의 아이들이 있었다. 버스를 타고 또다시 아까와 같은 풍경을 연출하며 짐을 내리고, 은하계에서 가장 어색했던 시간들과, 맛없는 저녁과, 재미없는 행사들과, 구린 안주를 놓은 구린 술판이 똥으로 가득 찬 오아시스처럼 펼쳐졌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을 해야만 하는 걸까.'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내 시선은 한 여학생에게 머물러 있었다. 내가 재수생임을 밝히며 원래는 같은 학번이 되었어야 하는 친구들과 통성명을 하고 친구가 되기로 했을때, 꼿꼿한 자세로 '그래도 선배는 선배지.'라며 앙칼진 개년짓을 하던 여자였다. 나는 수능 고사장에 들어갈때 외워야 하는 합격의 주문을 외듯이 '쌍년'이라고 계속 중얼거리면서도 말앞마다 '언니는~ 누나는~'을 을 붙이고 있던 그년이 제법 예쁘다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자신이 선배라고 강조하던 그 도도한 얼굴이 무너지며, 그녀가 지르게 될 맛살보다 야들야들한 교성이 듣고 싶어졌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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