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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마이애미 비치

마이애미 비치 (8)

프로매국노 2013. 5. 4. 01:32

 사실 그 당시의 쓸쓸하고 처량한 내 마음은, 고기보다 영혼을 위한 홍합 수프 같은 것이 필요한 순간이었다. 그건 그렇고, 어쨌든 간에 진정 뜨거운 섹스는, 정말 재미있는 사랑은, 똥통에서 재림한 예수처럼 나타나야 제맛인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며 난 샤워를 하고 머리를 말린 뒤에 단정한 옷을 입고 향수까지 두번 뿌린 다음 그녀를 만나러 갔다. 그녀는 눈빛으로 말했다. '꼭 그렇게까지 했어야 하느냐고.' 그리고 나는 그런 눈빛으로 말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걸 어떡하냐고.' 살짝 들떠있는 채 고기를 구우며 내가 입을 열때마다 빛나는 눈으로 날 바라보고 미소지어주는 그녀의 모습에서, 난 무언가가 시작되었다는 확신이 들었다. 각자 소주를 한병씩 마시고 어느 정도 취기가 오르자, 난 너에게 꼭 보여주고 싶은 게 있다며 혜림이를 내 반지하 자취방으로 데려갔다. 그리고 그녀에게 보여주기 위해 팬티 속에 숨겨 두었던, 조그맣고 단단하며 송이버섯같이 생긴 장승을 꺼냈다. 그녀는 그것을 정성껏 핥기 시작했고 나는 캔 맥주를 마셨다. 천국이 있다면 이런 것이 아닐까. 아리따운 아가씨가 내 고추를 부드럽게 핥아주며, 캔 맥주는 무한 리필로 제공되는 그런 천국이라면 한 번쯤 가볼 만 할텐데. 입 속에 살짝 남았던 맥주를 그녀와 공유하며, 우리는 쌉쌀하고 시원한 키스를 했다. 그리고 그녀의 살 냄새를 맡으며, 마젤란같은 혓바닥으로 그녀의 몸을 일주했다. 그녀의 엉덩이가 몇번 들썩였고, 아찔한 교성이 몇번 흘렀다. 그리고 그녀는 침대에 엎드렸다. 난 그녀의 골반을 꽉 잡고 둘만의 우주로 가기 위한 장전같은 것을 마친 뒤 운동과 취미 사이의 야릇한 애정행각을 시작했다. 나의 계기판이 시계 방향으로 기울 수록, 그녀의 신음은 더욱 빠르게 커져갔다. 그리고 또다시, 나의 몸 전체가 시속 220Km의 스피드로 달아오르던 순간이었다.


"아! 으아! 쌍년!" 

"죄송해요. 잘못했어요. 용서해 주세요. 아, 아아…."

"씨발년, 넌 씨발년이야!"

"제가 잘못했어요, 아, 오빠…. 아앙…."


 아차! 싶다가도, '아니, 이런 기묘한 취향이 다 있을 수 있는 것인가.'하며 감탄한 뒤에 난 그녀의 엉덩이를 선풍기처럼 후려쳤다. 그때마다 슬롯 머신의 잭팟처럼 터져나오는 그녀의 신음에 난 꼭지가 돌아버릴 지경이었고, 결국 침을 뭍힌 손가락을 그녀의 분홍색 항문에 쑤셔넣었다. 교성과 비명사이의 탄성이 내 자취방을 뒤덮었다. 그리고 우리는 절정에 달했다. 비누로 손을 박박 씻고 나도 모르게 입에 한번 넣어 보았다. 비누 맛이 났다. 침대로 간 다음엔 그녀를 팔에 눕히고 못다한 이야기를 밤새 나누었다. 이래서 난 이렇고, 그래서 넌 그렇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렇게 될 수 밖에 없었다는 이야기들이 빗방울처럼 쏟아졌다. 그동안 어떤 생각을 하며 지냈고, 어떤 사람을 만났고, 어떤 일이 있었는지 이야기했고, 또 그녀의 그런 이야기들을 들었다. 


"그때 그런 일이 있고난 뒤부터, 사정하기 직전에 욕을 하는 버릇이 생겼어. 그게 참 신기한 게, 어떤 충동을 느낄 겨를도 없이 욕이 나오고, 격한 행동을 하게 되곤 하더라고." 


 조금 당황스럽긴 했지만 짜릿했다며 내 품속에서 눈을 감고 배시시 웃는 혜림이를 보며, 나는 다시 한번 사랑을 믿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이 여자라면, 눈 앞에 어떤 지옥이 펼쳐지리라도 지켜주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난 그것이 또 다른 지옥의 시작일줄은 꿈에도 몰랐다. 사랑은, 믿고 자시고간에 서로 자신을 좀더 돌보며 적당한 거리를 두는 것도 중요한 것이었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그런 식이었다. 혜림이는 이제야 진정한 내 사랑을 만난 것 같다며 일요일 아침 남의 집 문을 두드리는 종교인같은 표정으로 주변의 친구들을 하나씩 정리하면서, 오직 자신의 연인만을 위해 스스로 고립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난 이랬는데 넌 그정도도 못해?'라는 암묵적인 메시지를 간헐적으로 보내곤 했다. 그때 그녀가 나에게 몇 번씩 물어보곤 했던 그 질문이 떠오른다. '만약 내가 죽으면 어떻게 할거야?' 대답은 항상 그녀가 먼저였다. '난 만약 네가 죽는다면 널 따라 죽어버릴 거야. 네가 없는 삶은 상상할 수가 없어.' 그럴때마다 난 장난처럼 '야, 그래도 산 사람은 살아야지. 네가 죽으면 삼년장은 치뤄줄게. 하지만 난 장가는 꼭 갈거야.'라고 답하곤 했다. 예상했던 반응이 아니라는 듯, 뾰루퉁하게 튀어나온 입술에 조용히 내 입을 맞출 때마다, 그녀는 다시 환하게 웃으며 내 얼굴 이곳 저곳에 뽀뽀를 해대곤 했다. 그땐 그녀가 날 사랑해서 그런 이야기들을 하는 줄 알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보다 더 미친 년이 그곳에 있었다. 


 우리가 정말 서로에게 사랑이란 감정을 느끼고, 그것을 나누었다고 믿을 법한 순간들이 이어졌다. 내가 그녀의 자취방을 찾을 땐, 작은 물건 하나하나, 심지어 책상 위 머리핀이나 치킨집 쿠폰 마저도 '예쁘게 봐 주세요'라고 말을 하는 것 처럼 단정하게 놓여 있었다. 뭐가 먹고 싶냐고 물었을때, 밥이 먹고 싶다하면 그 조그만 주방에서 7첩 반상이 나왔고, 찌개가 먹고 싶다 말하면 일본 스모 선수 세명이 먹을만한 창코나베 같은게 나왔고, 어느날은 나도 모르게 새우튀김이 먹고 싶다고 한 뒤, 잠깐 눈을 붙였다가 혜림이가 울면서 깨워 일어나보니 튀김용 기름에 불이 붙어 소방차를 부른 적도 있었다. 혜림이는 무슨 일을 하기 전에 항상 나에게 물어봤다. '언제 나 친구 만나러 가도 돼?' '잠깐 밥 좀 먹고 와도 너 심심하지 않겠지?' '나 졸려운데 자도 돼?' 솔직히 귀찮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일 것이다. 하지만 그 밑도 끝도 없이 불타는 애정은, 정말 소중하게 잘 다뤄야 할 필요가 있었다. 나를 사랑해준다는 마음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기보다, 그것은 정말 예민하기 때문에 살짝이라도 비뚤어져 버린다면 어떤 병적인 집착이나 애증으로 변해 둘의 사이를 끊임없이 괴롭히게 되기 때문이다. 그 계기는 정말 쉽게 다가왔다. 조별 과제를 함께 하기로 했던 두더지같이 생긴 여자애가 '오빠, 혹시 지금 안 자면 자료 좀 보내주세요.'라고 명쾌하게 말했으면 좋았을 걸, '오빠 자요?ㅎㅎ'라고 보낸 의미심장한 한마디부터였다. 항상 나몰래 내 휴대폰을 뒤지던 버릇이 있던 혜림이는, 지랑 섹스하는 꿈을 꾸던 내 뺨을 후려치기 시작했다. 꿈 속에서 나는 혜림이와 처음으로 아날 섹스에 도전했다. 그 금단의 영역에 고추를 들이민 짜릿함에 가슴이 요동치자, 그녀가 나를 돌아봤다. 내 고추앞엔 혜림이가 아닌 조교가 시커먼 엉덩이를 내밀고 있었다. 조교는 여태껏 보았던 모습 중 가장 환한 비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후장에다 넣으려니까 기분이 그렇게 좋디?' 그리고 조교는 판크라스의 잔혹한 레슬러로 변해, 내 뺨을 아프리카 타악기처럼 후려쳤다. 눈을 떠 보니 혜림이가 우키요에 속 사무라이 같은 표정을 지은 채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니가 나한테 어떻게 이럴 수가 있니? 내가 너때문에 얼마나 많은 걸 포기했는데, 널 얼마나 사랑하는데, 너땜에 진짜 미쳐버릴 것 같은데!' 그리고 크게 숨을 한번 고른 뒤 부들부들 떨면서 언젠가 드라마 속에서 봤던 것 같은 대사를 대량살상무기처럼 발포했다. '이년 누구야? 뭐하는애야? 뭣때문에 이런 애랑 노는건데? 내가 얘보다 못한게 뭐야? 뭔데? 뭐냐고? 말을 좀 해봐. 응?' 아니, 말을 할 기회를 줘야 말을 하지. 잠이 덜 깬 채로 얼얼한 뺨을 쥔 채 밥그릇을 빼앗긴 강아지처럼 멍하니 앉아있는 나에게, 혜림이는 베게를 던지더니 다시 울면서 내 허벅지에 얼굴을 비볐다. '왜 그래. 나 정말 잘하잖아. 나 너밖에 모른단 말야. 너 아니면 안됀단말야. 나 죽을거야. 차라리 죽어버리면 이렇게 가슴아프지도 않고 좋겠지?' 그제야 나는 정신이 좀 들었다. 


"아니 도대체 왜 그러는데? 무슨 여자 얘길 하는거야?" 

"이거 봐." 

"아, 얘. 그냥 같이 과제하는 애야."

"근데 왜 자냐고 물어봐? 니가 자는 거랑 얘는 무슨 상관인데?" 

"내가 오늘 자료를 좀 보내주기로 했거든."

"정말이야? 둘이 지금 짜고 나 속이는거 아냐?"

"에휴, 걱정도 팔자다. 봐봐 여기 PPT표지에 서말숙이랑 나랑 있지?"

"그러네."

"그렇지? 그치? 난 너밖에 몰라. 이제 알겠지? 그리고 거울 좀 보고와. 얘랑 니가 비교가 되긴 하니? 네가 얼마나 예쁜데…."

"응…." 

  

 혜림이는 그제서야 울음을 그치고 조용히 훌쩍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난 '아, 내가 존나 좆됐구나.'싶은 마음에 허탈한 웃음을 마치 사랑스러운 미소처럼 짓고 혜림이를 끌어안은 채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녀를 만났던 5개월간 그런 일은 대략 열번 내외였지만, 그때마다 소모되던 둘의 감정과 에너지를 꼬박꼬박 모았으면 벌써 애기를 한 다섯은 낳고 대학까지 보내지 않았을까. 겨드랑이에서 솟은 땀이 옆구리를 타고 떨어지던 한여름이었다. 나는 나무 껍질같은 얼굴로 그녀의 더이상 애정같지도 않은 의심과 괴롭힘에 모든 것을 포기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왜 말이 없냐며 내 핸드폰을 던진 뒤 날 노려보는, 독기를 품은 그녀의 시선이 느껴졌다. 거기서 난, 이젠 약간 차가워져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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