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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마이애미 비치

마이애미 비치 (10)

프로매국노 2013. 5. 10. 05:49

 다시 혼자가 된다는 것은 분명 익숙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이전에 생각했던 것보다 유독 낯선 기분이었다. 한시도 빠짐없이 붙들고 지내던 휴대폰의 잠잠함, 그리고 무료함, 무엇보다 내가 필요할 때 나와 섹스해줄 누군가가 없다는 것은 내 인생의 가장 큰 고통이었다. 그럴 때마다 난 컴퓨터를 켜고 이름모를 남녀의 2차원적인 정사를 관람했다. 그리고 올챙이 같은 것이 군집된 희멀건 액체를 쭉쭉 뽑아냈다. 담배를 피우고 한숨을 소화기처럼 뿜은 뒤에는 옛날 영화를 보곤 했다. 어느순간부터 난 서양 남성과 동양 여성의 영상물을 모았다. 혜림이는 키가 큰 남자를 좋아했으니까 분명 길쭉한 서양인을 만나지 않을까. 그리고 그놈은 마음 속으로 혜림이를 쉬운 여자로 보겠지. 혜림이는 그것도 모른채 그놈의 그 핫도그용 소시지 같은 것을 열심히 빨다가 어느 날 휴지에 닦인 정자들처럼 버려지진 않을까. 차라리 그랬으면, 그래서 나랑 지냈던 시간들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지기라도 한다면 어떨까. 결국 그렇게 되어 그녀가 유학을 택한 것을 후회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난 어릴 때 미니카를 훔치려다가 문방구 주인에게 덜미를 잡혀 10분동안 소처럼 끌려다닌 일 이후로 가장 부끄러워졌다. 다 끝난 일인데 난 왜 이렇게 찌질할 수밖에 없는 것일까. 그러면서도 시간이 지날수록 혜림이가 미워졌다. 어느 순간, 그녀와 제일 가까운 거리에 있던 나조차도 모르게, 나에 대한 감정을 정리하고 혼자 가슴아파하다가 눈물을 삼키고 아무렇지 않다는 듯 극복해냈을 그녀의 모습을 떠올리니 속이 울렁거렸다. 대개 그런 생각들을 하며 나는 1학년의 2학기를 보냈다. 결국 난 억울해졌다. 그러니까 누군가를 만날 때, 그 만나는 순간 내의 좋았던 시간과 나빴던 시간의 총량에서 그사람과 헤어진 뒤의 괴로움을 합하면, 이건 결국 손해보는 장사가 아닐까. 그리고 결국엔 예전에 느꼈던 막연한 생각들이 맞았다는, 그런 느낌이 들었다. 꼴리는 여자를 만나 연애를 하고, 그녀에게 어떤 특정한 의미를 부여한다던지, 같잖고도 유치한 운명같은 표현이라던지, 어떤 둘 간의 대단한 무언가가 있다고 믿지 말고, 헤어지게 된다면 그냥 헤어지고, 그리고 또 다시 꼴리는 여자를 만나자. 그것 밖엔 방법이 없다고 느꼈다. 그리고 난 실로 민주주의적인 섹스를 쟁취하기 위해 태어난, 결연한 섹스노조원의 표정을 지어보았다. 갑자기 꼴리는 여자를 보면 방향이 휘는 수맥봉 같은 고추를 마련한 기분이 들었다. '탐스러운 녀석 같으니….' 그날은 불알을 만지며 잠에 들었다. 


 남은 가을과 시작되는 겨울동안 나는 그저 이산화탄소라던가 똥 같은 걸 만들며 지냈다. 그런 내가 측은했던지, 친구들은 나에게 건너건너 알게된 여자 아이들을 소개시켜 주었다. 때로는 그녀들이 나를 거부했고, 내가 누군가를 거부한 적도 있었다. 그러다가 한 번 술을 마시고 섹스를 하게 된 여자아이는 사정과 동시에 터져나온 나의 쌍욕을 듣고 무슨 바퀴벌레계의 카이사르라도 본 것처럼 벙찐 표정으로 누워있다가 남한의 졸부를 만난 인민군 장교같은 태도로 돌변하며 나와 연락을 끊었다. 난 다시금 '이게 보통은 이해할 수 없는 문제였구나.'하고 생각하며 나를 스쳐간 누군가를 그리워했다. 그리고 그렇게 되기 이전을 그리워했다. 그러면서 이 광견병에 걸린 도사견만도 못한 버릇은 언제가 되야 고쳐질런지, 만약 고치지 못한다면 이걸 어떻게 해야 할지 걱정되기 시작했다.  


 2월의 첫째날, 나는 친구를 따라 주말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적당한 규모의 술집이었다. 청와대 주방에서 나온 소세지 야채볶음따위를 경호라도 하듯, 친구는 분주하게 움직였고 나는 멍하게 그것을 구경하고 있었다. 그리고 점점 손님을 익숙하게 받기 시작하고, 짬짬이 화장실 청소를 한다던가, 어떤 테이블에 소주가 몇 병이 놓였고, 어떤 손님이 화장실에 꼭 토사물을 흘려 놓는지 알아가기 시작했다. 그 벌집같은 광경이 처음은 낯설었으나 그저 술과 안주를 놓고 망가진 손님들을 구경하다가 집에 가면 그만인 아주 단순한 일인 것을 어느 순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올때마다 눈길 주는 사람 하나 없건만 망치로 때리면 금이 갈 수준의 화장을 해 놓고 꼭 부대찌개만 시켜먹던, 작고 통통한 세 명의 여자아이들이 가끔 날 보며 수근거리던 일이 묘하게 신경쓰이기 시작했다. 이건 마치 그렇고 그런 일이 아닐까 싶은 막연한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나버리고 말았다. 그날도 난 휴대용 가스렌지를 들고 손가락에 소주 한 병을 끼운 다음, 그녀들을 한번씩 훑어보고, 테이블에 물건을 놓은 뒤, '즐거운 시간 되세요.'라는 나름의 멘트까지 친 후 등을 돌렸다. 


"저기요, 오빠!" 

"네?"

"손님도 없는 것 같은데, 소주 한잔 받을래요?" 

"아, 안돼는데, 혼나는데….딱 한잔만이에요." 

"근데요. 있잖아요. 소주한잔 받았으니까 오빠 번호좀 알려주면 안돼요?"

"핸드폰 줘 봐요." 

"제 이름은요, 은지에요."

"운지?"

"아뇨, 은지요. 스물한살이에요."

"아, 은지요? 알았어요. 동갑이네. 용기 내 줘서 고마워요. 다음에 꼭 봐요." 


 은지는 쌍커풀 없이 살짝 쳐진 눈을 짙은 스모키로 가리고, 밝은 갈색의 단발머리를 한 여자아이였다. 나는 그녀의 통통함보다 두툼함이 어울리는 허벅지를 보며 그동안 마른 아이들을 많이 만나 보았으니 이제는 보다 육덕진 무엇인가를 한번 맛보아야 할 때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 아이에게 내 번호를 주고 눈을 마주친 뒤 핸드폰을 건네며 살짝 손끝이 맞닿는 순간, 여름 방학때 노가다를 마치고 마셨던 반쯤 언 맥주의 짜릿함이 느껴졌다. 나는 등본을 떼기 위해 동사무소로 간 뒤 순번대기표를 뽑아 기다리는 심정으로 그녀와 밥을 먹고 영화를 보고 커피를 마셨다. 지금 생각해봐도, 언제나 있어야 할 절차 따위는 딱히 중요한 게 아니다. 중요한 건 분위기다. '지금 내가 널 보며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는 눈치를 상대방이 느낄 때까지 줘야 한다. 그녀와 커피를 마시던 나의 표정은, '너에게 살주사를 한 방 놔 주고 싶네.' 같은 것이었다. 그때 거울을 보지 않아서 자세히는 모르겠어도, 아마도 분명 그럴 것이다.  

 

 조금 천천히 손부터 잡고, 내일은 키스, 모레는 가슴, 글피는 팬티에 손만 넣길 바랬던 은지의 성적 판타지는, 내 밑도 끝도 없는 육탄전에 산산이 부서졌다. 그 때를 회상하던 은지는, '네가 키스를 너무 잘해서 그래.'라며 살며시 웃곤 했다. 그러니까 자기는 내가 그런 걸 바라는 줄 알면서도, 결국 집에 갈 줄 알았다는 것이다. 나는 끝내 그녀가 끓여주는 라면을 먹겠다며 버텼다. 결국 나는 '라면이 없으면 뭐 어때. 내가 사오면 그만이지.'하며 너구리 두봉지와 오카모토 콘돔을 사들고 그녀의 방으로 달려갔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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