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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마이애미 비치

마이애미 비치 (12)

프로매국노 2013. 5. 11. 00:07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2학년 1학기는 그녀와 만나는 날만 기다리며 지냈다. 그녀와 헤어지고 난 뒤엔, 또 다음에 만날 시간을 기다리곤 하면서 3개월을 하룻밤사이의 꿈같이 보냈다. 방학때는 서로 아르바이트를 하며 떨어진 순간을 아쉬워했고, 그리고 그 해 가을, 우리는 다시 만났다. 일이 힘에 부쳤는지 약간 헤쓱해진 은지의 볼을 쓰다듬어보니 그동안 난 왜 그렇게 이 아이를 어려워했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손을 잡고 한강 둔치의 산책로를 걷다가 예산낭비의 집대성처럼 생긴 운동기구들 사이에서 콕 박혀있는 벤치에 앉았다. 그리고 맥주를 마시며 방학동안 있었던 이야기들을, 정확히는 너에게만 하고 싶었던 이야기들을 바둑알처럼 건넸다. 오래간만에 만난 은지는 여전히 귀여웠고, 그녀가 귀엽게 느껴지는 만큼 나는 그녀의 속살을 맛보고 싶어졌다. 


"우리 오래간만에 만난 기념으로, 너네 집에 가서 한번만 할까?"

"으휴, 안그래도 그런 말 할 줄 알았어." 

"왜? 사랑한다면 당연한거 아냐?"

"그거야 그렇지만…." 


 아마 그녀에겐, 나에게 욕을 먹기 싫은 마음과 심심한 데이트를 조금 더 즐기고 싶은 마음이 치킨처럼 반반으로 나뉘어져 있지 않았을까. 어쨋든 우리는 그렇게 하기로 하고, 마트에서 장을 보며 김치찌개와 막걸리를 함께 떠올렸다. 봉투에 담긴 몇개의 술병과 큰 대파 한봉지, 그리고 꼭 맞잡은 두 손이 마치 신혼부부와 같은 정취를 풍겼다. 조금 있으면 보글보글 끓는 찌개와 함께 우린 마저 못했던 이야기들을 나누며 또다시 하나가 되겠지. 그러면서 조만간 사정을 할 생각을 하니, '이번에는 좀 그러지 말았으면 좋겠는데.'싶은 마음이 들었다. 고추가 약간 시들어버린 기분이었다. 방안에서 허브 냄새를 나게 한다며 업어 온뒤에 내가 말려 죽였던 로즈마리가 떠올랐다. 뭐 결국 내가 말려 죽인 건, 그뿐만이 아니었지만 말이다. 


 은지는 서투른 솜씨로 냄비에 물을 붓고 김치를 썰기 시작했다. 그 뽀얗고 통통한 햄 같은 팔이 위아래로 움직이며 떨리는 광경은, 언젠가 남산타워에서 보았던 서울시의 풍경보다도 아름다웠다. 나는 그녀의 뒤로 천천히 걸어가 그녀를 꼭 안아주었다. 그리고 장난처럼 배를 움켜진 뒤, 목덜미와 볼에 키스를 해 주었다. 나를 돌아본 은지는 눈을 살포시 감고 있었다. 난 그녀를 다시 살짝 안은 뒤, 가스렌지의 불을 끄고 침대로 데려갔다. 그리고 그동안 그녀를 만지지 못했던 아쉬움만큼, 그녀의 몸 이곳저곳을 주무르고 더듬고 살짝 물었다 빨기를 반복했다. 그리웠던 그녀의 살 냄새가 났다. 나는 그녀의 유륜을 시계 반대 방향으로 핥으면서 꺼끌꺼끌하며 때로는 촉촉해지는 그곳을 만지다가, 대충 이때쯤 되었다 싶을 때 바지를 벗고, 여자들의 허전한 마음을 꽉 채워줄 수 있는 작은 홍두깨를 집어넣었다. 하나, 둘, 셋, 좌로, 넷, 다섯, 여섯, 우로. 언제 생각해도 이름마저 기발한 좌삼삼 우삼삼과 쑥 집어넣고 한박자 쉬고, 다시 두 번 집어넣고 한박자 쉬기를 반복하니 밀가루 반죽을 치대는 듯한 소리와 둘의 교성이 적당히 어우러져 그녀의 작은 자취방은 어떤 에로틱한 소립자로 가득 찬 곳 같았다. 천장을 보며 누워있던 그녀에게 말없이 엎드려 달라는 부탁을 하고, 난 그녀의 허리를 잡은 채 '오늘은 절대 욕을 하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평소보다 2분정도 길게, 그리고 누구보다 빠르게 그녀의 몸속 깊은 곳까지 어묵 같은 것을 집어넣고 있었다. '압력 취사가 완료되었습니다.'라는 이름모를 여성의 명료한 목소리라도 울려퍼진듯, 나의 몸 전체가 분출하지 못한 어마어마한 열기를 품게 되었다. 목구멍에서 삐져나오는 알 수 없는 소리를 마음으로 눌렀다. 


"끅! 뛭!" 

"아! 아항!" 


 내가 참는 것을 느낀 그녀는, 더욱 태연하고 농밀한 신음을 냈다. 그렇게라도 표현해야 했었나보다. 그런데 목구멍에서 빠져나가지 못했던 그 어떤 열기는, 그만 일종의 광기로 변해버리고 말았다. 나는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 부엌에 놓여있던 손질된 대파에 로션을 쭉 뿌린 후, 그것을 그녀의 항문에 꽂아버렸다. 교성도 탄성도 아닌 비명이 흘렀다. 그리고나서, '이건 좀 아닌 것 같지 않아?'라며 화분처럼 엎드려 대파를 꽂아 놓은 항문 밑의, 그 홍합 같은 것이 벌렁거리며 말을 하는 것을 들었다. 못생기고 털까지 나 있는게 말은 참 잘하네. 그제야 나는 징으로 머리를 얻어 맞은 듯 멍해졌다. 나는 그녀에게 박혀있던 대파를 다시 뽑은 뒤에 1초동안 버벅거리다가 서둘러 옷을 입고 자취방으로 돌아갔다. 나를 부르던 그녀의 목소리가 점점 멀어져가고 있었다. '나는 망가진 인간이야.'라며 중얼거릴수록 미안한 마음만 커져갔다. 집에 돌아오니 그녀가 보낸 문자가 와 있었다. '참지 못하겠으면 그냥 욕을 해도 상관 없어. 난 이해해줄수 있어. 너 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이상한 거 아냐. 괜찮아. 빨리 연락해줘. 이야기좀 하자.' 통화라도 했으면 좋았을 것을. 난 그자리에 서서 답장을 보냈다. '아냐, 난 할 말이 없어. 난 병신이야. 도저히 안되겠어. 고칠 수가 없어. 어떻게 해야할지도 모르겠고. 네가 괴로워하는 모습도 보고 싶지 않아. 나도 내가 이해가 안돼. 미안해. 정말 미안해.' 잠시 후 답장이 왔다. '그럼 우리 헤어지는거야?' 내 답변은 아까와 같았다. '미안해.' 한달의 시간을 십년같이 보내며, 우리는 몇 번의 연락을 서로 주거나 받았다. 난 더이상 착하고 순수한 그녀를 내 뒤틀린 욕정으로 물들이고 싶지 않아졌다. 그리고 그녀가 더이상 누군갈 만나며 괴로워하지 않길 바랬다. 그녀는 마지막으로 '그래도 난 항상, 네가 날 사랑하는 만큼보다 더 너를 사랑했어. 나는 네가 변하길 바랬어.'라는 메시지를 남기고 내 앞에서 사라졌다. 나는 괴뢰 정권의 수장보다 더한 개새끼가 된 기분이 들었다. 그러면서도 이런 미안한 기분이, 사랑했던 누군가를 한순간에 잃어버린 고통보단 훨씬 나은 것이란 걸 알았다. 그렇게 난 버릇 뿐만이 아니라, 근본적으로도 비글보다 못한 놈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일주일이 지난 후, 내 앞에는, 남들 앞에서 몇 번씩 토해내 되새기던 은지와의 이야기를 말없이 들어주던 한 여자가 있었다. 그녀의 대답은 항상 똑같았다. 


"쓰레기네."

"그렇죠? 쓰레기죠? 완전, 완전 쓰레기죠?"

"응, 넌 아직 정신을 못 차린 것 같아." 

"전 어떻게 해야 하죠?"

"자살해라." 


 그리고 우리는 자조적인 사람들의 모임을 즉석에서 만든 것 처럼 낄낄대며 웃었다. 나보다 무려 세살이나 많았던 그녀의 이름은 수영이었다. 그녀는 깡마른 몸매에 약간 날카로운 인상과 볼륨감 있는 골반을 지녔고, 스스로 만들어낸 음침한 오오라에 뭍힌 채 사는 사람이었다. 그녀와 가까워진 건 며칠 만의 일이지만, 난 그녀에게 진짜로 신비한 무엇인가가 있다고 느꼈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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