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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년 초, 극심한 추위 속에서 약간의 소주와 김치찌개로 속을 채우고 친구들과 대전 둔산동의 "Cocoon"을 갔다. 귀가 얼얼할 정도로 큰 사운드가 나를 반겨 주었다. 천천히 계단을 내려가면서, 짧은 미니스커트의 아가씨들과 팔뚝에 기묘한 문신을 한 청년을 보았다. 분명 그들은 내게 관심이 없겠지만 나는 그들에게 유난히 관심이 갔다. 묻거나 따질 겨를도 없이 나와 친구들은 리듬을 탔다. 그때부터 나는 클럽이 좋았다. 정확하게는 그 이전부터지만, 막연한 환상을 벗어난 시점부터 좋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신발 속의 깔창은 나를 좀 더 용기 있는 남자로 만들어 주었다. 깔창이 드러나지 않게 내 키에 비해 좀 더 긴 청바지를 입었다. 친구들과 몇 번의 눈빛 교환을 한 후 마치 들이대 달라는 것처럼 대형을 갖추고 있는 아가씨들 근처로 서서히 접근해 갔다. 결과는 생각보다 좋았다. 인터넷에서 알아낸 내용들을 바탕으로 우리는 천천히 예의바르게 들이댔다. 순간 조명이 꺼지고 DJ가 ‘키스 타임’을 외쳤다. 나는 상대방과 재미있게 문자를 나누는 친구를 보았고, 나의 파트너는 나의 얼굴을 보았다. 그리고 그녀는 친구의 손을 잡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오래된 힙합이나 저명한 하우스, 그리고 원더걸스……. 적어도 신선하고 즐거운 시카고 하우스 정도는 기대하던 나의 망상들은 DJ형님의 멘트와 함께 박살이 났다. 하지만 현실은 재미있었다. 당시 ‘텔미’가 끝물을 탈 무렵이었지만 누구보다 열심히 ‘텔미춤’을 추었던 게 생각난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DJ형님도 적성에 어느 정도 맞지 않는 한 나름 곤욕스러웠을 것이다. 클럽의 방침은 사장이 정한다. DJ의 음악적 취향이란 보기 좋게 거세된다. 신나게 웃으며 ‘간지’를 뽐내는 DJ라도 뒤에서 울며 "내가 고자라니"를 외칠 줄 누가 알겠는가. 더군다나 좁기로 유명한 DJ 세계에서 형님들 뒷바라지 하느라 나비가 되고 싶은 번데기 생활만 수년간 했을 것이 분명한데, 제물로 바친 젊음은 무엇으로 보상받게 될까. '짬'으로 받게 될까?

 하지만 DJ의 음악적 취향이라는 게 사실 그렇게 소중한 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오직, 입장료를 내고 들어와 바에 앉아 술을 마시는 '손님'이다. 이렇게 놓고 보면 국내 클럽 문화는 마땅히 흠 잡을 것도 없다. 애초에 클럽 문화라는 게 다 같이 모여서 서로 좋아하는 음악을 틀어 놓고 노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그 지나친 단순화에 나는 문제가 있다고 본다. 똑같이 대중가요를 튼다고 해도 원본을 그대로 사용하는 것보다 음악 자체를 리믹스 해서 틀어 줄 수는 없을까? 컷믹스나 간단한 비트매칭을 주로 하는 것보다 메쉬업이나 보다 물 흐르듯이 믹싱을 할 수는 없을까? 물론 DJ 형님들의 주머니 사정을 생각해 보자면 무리한 부탁일수도 있다. 나의 상상으로 끝날지 모르는 이야기지만, 언젠가 같은 음악을 항상 듣는 사람들의 귀가 어느 순간 질려버리지 않을까 싶다. 단지 ‘부비부비’에 목적이 있어서 온 남성이라면 어쩔 수 없지만, 같은 대중성을 가지고도 좀 더 참신한 음악들과 테크닉 부분에서 발전된 신명나는 음악을 들을 수는 없을 것일까.

 DJ들의 노력을 나는 전면적으로 부정하지는 않는다. 다만 애석하게도 장인 정신이 없는, 그저 ‘날로 먹으려는’ DJ들이 있다는 것을 느꼈을 뿐이다. 한 컴필레이션 앨범을 반쯤 통으로 틀어놓고 하는 척만 하는 DJ가 있다는 이야기를 인터넷 상에서 본 적이 있다. 클럽에 돈을 주고 들어가는 소비자의 입장에서는 고발을 목적으로 한 TV 프로그램에 올릴 만한 일이다.

 사실 클럽에서 놀며 이런 세세한 부분까지 신경 쓰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나는 단순히 소비자의 입장에서 같은 가격이면 좀 더 좋은 질의 물건을 사는 게 낫다는 입장이다. 이를 위해선 소비자의 역량이 중요하다고 본다. 만약 클럽 문화에 관심이 있다면, DJ에 대해서도 약간은 관심을 가져 주는 것이 어떨까. 아마 그들은 약간 부담스러워하면서도 매우 좋아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클럽 문화는 더욱 발전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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