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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 생존기

피아노 구입한 이야기

프로매국노 2018. 11. 14. 18:35

쇼팽의 발라드 1번을 듣고 문화충격을 받은 뒤, 까짓거 직접 한번 쳐보자!는 심정으로 어찌저찌 1년넘게 피아노를 배우고 있다. 다행히 소질은 나쁘지 않아 바이엘을 빠르게 끝내고 체르니 100번과 소나티네를 함께 치며 고통의 매일매일을 보내고 있다. 피아노를 구입해야겠다 싶었던건, 디지털 피아노의 한계를 명확하게 느낌과 동시에 스튜디오로 이사를 오게 된 것 때문이었다. 디지털 피아노의 경우에는 실력이 늘 수가 없다. 아니 물론 늘 수는 있는데 소리를 예쁘게 만들 수가 없다. 어쿠스틱의 터치가 빚어내는 소리의 뉘앙스를 만들 수가 없다는 이야기다. 그냥 취미나 뉴에이지 등의 경우 크게 상관은 없는데, 나는 클래식만 팔 예정이기때문에 어쿠스틱 피아노는 당연히 사야 했다. 


당시 코리아포스트에는 몇가지 피아노 매물이 올라와 있었다. 나는 아주 쿨하게 쓰레기같은 영창 콘솔 피아노를 450정도 주고 구입했다. 당시 내가 저지른 가장 큰 문제는 1. 소리가 망가진것과 조율이 되지 않은 것을 구분할 수 없었다는점. 2. 내부를 열어보지 않은 점. 3. 조급했던 점 등이다. 집에 물건을 받고 열어보니 해머 액션 구동장치에 온통 곰팡이가 슬어있었다. 해머의 마모도 상당했고, 잘못된 관리로 인해 좆망한 해머 정렬상태, 지나치게 무거운 건반 무게 등등의 문제가 있었다. 


아무 생각 없이 한국인 조율사를 불렀고, 그 사람은 550불의 견적을 얘기했다. 처음엔 띠용~ 했으나 나름 그정도까지는 생각하고 있었기에 그냥 콜을 했고 조율사는 3시간가량 조율, 조정, 정음을 마쳤다. 그러나 결과는 참담했다. 몇몇 키들은 여전히 눅눅한 감이 있었고 (내부 스프링이나 부속등의 문제였던 것으로 생각됌), 몇몇 현은 찌르르르 거리는 잡음이 났다. 그 쓰레기피아노를 치며 난 내 음감이 나름 예민한 편인걸 알게 되었다. 나중에는 집안에 있는 오븐에서 피아노 울림에 공명해 나는 잡음까지 잡아내곤 하니.. 


더군다가 일을 마친뒤, 다른 사람들에게 물어본 결과 나는 바가지를 쓴것 같았다. 정음이야말로 피아노 조율의 꽃이라고 볼 수 있는데, 보통 한시간 작업에 80불 정도 낸다더라. 그러면 대락 2시간 했고 조정, 조율 다 했으니 보통 350~400정도의 견적이면 아주 널럴하지 않았을까 싶다. 조율사에게 몇번 연락을 했으나 닿지 않았다. 당시 그사람의 핸드폰이나 통신사에 문제가 있었던 것 같다. 나중에 다시 연락이 닿아, 그렇게 돈을 썼는데도 상태가 이렇냐고 따져 물어 보았다. 나름 합당한 이유들을 제시했고 AS도 받았으며, 결과적으로는 본인의 선택 아니냐는 이야기를 하더라. 아직도 가격 부분에 대해서는 의문점이 조금 있다. 88키를 모두 정음작업 하긴 했지만, 그래도 좀 과한 느낌이 있다. 거의 40만원 가량의 돈인데.. 


결과적으로는 총체적인 좆망이었다. 나의 경험 부족과 성급함이 빚어낸 비극에 나는 거의 보름간 밤잠을 설쳤다. 1000불 가까이 돈을 썼는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쓰레기같은 피아노가 너무 미웠다. 어느날 나는 피아노가 좃같은 소리를 내자 샷건은 차마 못치고, 피아노를 그냥 옥션에 올려버렸다. 아무나 사라 ㅅㅂ 하는 심정으로 450불의 시작가, 600불의 바이 나우의 조건으로. 그런데 한 멍청한 중국인이 그냥 바이나우를 질러버렸고 다음날 바로 600불을 입금해주더라. 400불 가량의 손해였지만, 손절매의 가치가 충분하다고 생각하고 시원하게 팔아버렸다. 그리고 그 다음날부터 피아노를 열심히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처음 본 피아노는 450불에 올라온 삼익 콘솔이었다. 가운데 페달쪽 작동이 시원치 않아 고음부에서 해머가 천에 막혀 답답한 소리를 내더라. 이외에도 저음부 현 마모가 심해 삼익 피아노인데도 불구하고 약간 먹먹한 소리가 났다. 키도 하나 안 올라왔고. 여기저기 피아노를 쳐 보고, 고장난 곳 딱딱 집어내니 아주머니께서 진땀을 삐질삐질 흘리시더라.. 쿨하게 '이거 얼마주고 사셨어요?' 물어보니.. '아니.. 상태가 많이 않좋나요?' '아뇨, 그리 나쁘진 않은데 가격에 비해 수리비가 조금 나오겠네요. 저는 조금 사기가 그렇네요 그래도 나쁜 가격은 아니니 열심히 팔아보세요.' 하고 나왔다. 





다음으로 본 피아노는 역시 450불의 삼익 업라이트였다. 도착해서 보니 외관은 좆망이엇다. 매직 낙서, 스티커 자국에, 건반에는 무슨 초콜릿 같은게 묻어있질 않나.. 그런데 막상 피아노를 까보니 이게 왠걸, 완전 새 피아노가 아닌가. 해머 목재에서는 은은한 향이 나고, 내부는 아주 깨끗했으며 마모도도 거의 새 제품이라고 해도 믿을 수준이었다. 확인해본 연식은 대략 07년식으로 예상되었으며 인도네시아산 삼익 모델이었다. 새제품 가격은 대략 300만원대 중반 예상. 살까 말까 한참을 고민하는 척 하며...30분간 건반을 주무르다 아주머니께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20불만 깎아주시면 바로 사겠습니다.'하며 수락을 얻어냈다. 그야말로 쾌거였다. 10년밖에 안된데다 집안 내에서 관리가 된 피아노였기에 내부상태도 매우 깨끗했다. 스툴은 완전 쓰레기가 되었지만 외관만 깨끗하게 닦아서 쓰면 1500불에 되팔아도 좋을 것 같았다. 소리는 약간 쨍한 느낌이 나는 쿨톤. 영창처럼 대충 쳐도 예쁜 소리가 나는 피아노는 아니었다. 터치감도 약간 묵직한 감이 있었고, 나중에 베토벤 소나타를 치면 기가 막힐 것 같은 소리의 피아노였다. 


이후로 집에 모셔운 뒤 조율 한번 받고 애지중지하며 관리하고 있다. 그러면 간략하게 뉴질랜드에서 중고피아노 사는 요령에 대해 적어본다. 물론 무적권 지켜야 할 사항들이다. 


1. 피아노의 연식, 모델을 무조건 확인하라. 국산은 20년 안쪽의 연식이 좋고, 일제는 뭐 크게 상관없다. 상태만 좋으면 됌. 


2. 내부를 무조껀 까 봐야 한다. 겉모습만 봐서는 절대 알 수 없는게 피아노다. 껍데기를 깐 상태에서 모든 건반과 해머, 페달의 상태를 봐야 한다. 


3. 관련 검색들은 필수다. 특히 해머 정렬이나 해머 마모도에 관한 정보를 얻고 가는게 좋다. 왜냐면 조율까지는 해줘도 정음은 많이 안하기 때문에, 막상 피아노 사놓고 보면 소리 좆같이 나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 


4. 집에 오르막 계단이 얼마나 있는지 확인하고 네고를 한다. 오르막 계단이 다 배송비다. 


5. 코리아포스트의 피아노 파는 아줌마들을 절대 믿지 마라. 그 아줌마들, 자기가 뭘 파는지도 모르고 그냥 남들이 다 그 가격에 파니까 대충 400-500불에 피아노 파는거다. 그러니 거의 폐급의 쓰레기 피아노부터 최상급의 민트급 피아노까지 다 400-500불에 퉁쳐진다. 


6. 한인 조율사 또한 믿지 말아야 할 듯 싶다. 굳이 받으려면 조율만 받아보고(한인 조율사는 조율이 쌈) 나머지는 키위 조율사와 상의 해 본뒤 네고를 하는게 나을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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