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그녀의 은밀한 곳으로 월드컵 16강의 감격처럼 달아 오른 나의 탱크보이를 집어넣는 순간이었다. ! 여성의 성기도 맞춤이 있나요? 누가 옆에 있었다면 그런 질문을 하지 않았을까. 적당한 습도와 적당한 조임이 나의 고추를 사정없이 쥐어짜내기 시작했다. 그녀가 나의 골반 위에서 거친 승마를 즐기고 있는 순간 나는 문득 어떤 철학 교양 수업에서 주워들은 이름 모를 그리스 인의 모든 것은 하나다라는 주장이 떠올랐다. 실로 만물이 합일되는 신성한 순간이었다. 취기도 얼큰하여 정신없이 한판을 끝내고 우리는 약속이라도 한 듯 속삭이다 밤을 새워가며 섹스를 했다. 아침은 눈치도 없이 밝아왔고 신림동의 허름한 주택가에도 햇살이 슬금슬금 들어오기 시작했다. 나는 그제야 그녀를 팔에 눕히고 밤새 못 골았던 코를 드르렁드르렁 골면서 잠을 잤다. 그러다 오후 네 시가 되어서야 눈을 떴다.

 

 진숙이 칫솔로 이를 박박 닦고 손을 잡고 내려가 해장국을 한 사발 먹었다. 그녀는 간호사 시험을 준비 중 이라고. 자신 없이 웃다가 내가 공기밥을 세 그릇이나 비우는 걸 대단하게 보는 그녀의 모습이 왠지 안쓰러우면서도 한없이 사랑스러웠다. 사정상 부모님과 함께 살지 못한다는 이야기나 강간을 당할 뻔 했다거나 요새 스토커가 있는 것 같다는 둥 그녀는 슈퍼마켓의 영수증 출력기처럼 온갖 이야기들을 따닥따닥 쏟아냈다.

 

 그녀는 꼭 해가 떨어질 때 쯤 집을 나섰다. 친한 언니가 일하는 바에서 서빙을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꼭 굽이 높은 하이힐과 허벅지 사이로 손을 집어넣고 싶은 충동이 드는 짧은 치마를 입고 반짝거리는 귀걸이까지 꼼꼼하게 끼운 다음에 출근을 했다. 집에 가 봐야 라면에 찬밥만 말아먹어야 하기에 나는 집에 있는 시간보다 진숙이의 허름한 자취방에서 뒹굴거리는 시간이 더 많았다. 공장 일은 너무 재미가 없어서 그만두었다. 그와 동시에 노식이형이 매독에 걸렸다는 전화를 받았다. 창문이 없고 둘이 앉으면 꽉 차는 고시원에서 노식이형은 새우깡에 소주를 마시며 전쟁 영웅이 된 것처럼 자랑스레 이야기했다. 진숙이가 소리가 그렇게 크다나. 옆방에서 벽을 몇 번 치기도 했는데, 다음날 옆방 문을 발로 차고 들어가 그 고시생의 멱살을 잡고 뜨거운 사랑을 속삭여 주었다고. 그러다가 한참 말이 없더니 어릴 적 아버지가 새 장가를 들었고, 그 전에 어머니께서 암으로 돌아가셨단다. 할머니 집에서 학교를 다녔고 삥을 뜯으며 담뱃값을 마련했다고. 가끔 돈을 유난히 많이 뜯은 날은 아데나를 조금씩 사 모았다고 한다. 조그만 소리로 껄껄거리는 노식이형의 냄새나는 일본풍 문신이 촉촉하게 슬퍼보였다. 그러면서도 왠지 모를 불안감에 고추 끝이 따가웠다.

 

 나는 가끔씩 진숙이가 일하는 바에 놀러갔다. 그때마다 전 나이를 먹고 싶지 않아요라고 얼굴에 써 놓은 것 같은 윤옥이 누나가 날 반겨 주었다. 성대에 파워 앰프를 달아 놓았는지 윤옥이 누나는 목소리도 참 크고 잘 웃는 삼십 대 초반의 젊은 사장님이었다. 그 누나는 비위도 좋게 안경 끼고 뚱뚱한 아저씨들과 야한 농담을 잘 주고받곤 했다. 라면에 비아그라를 넣으면 면발이 발딱 선다나 뭐라나. 가끔은 아저씨들이 진숙이한테 무슨 이야기를 속닥거렸는데, 그럴 때마다 난 고개를 푹 숙이고 어떤 손님이 먹다 남긴 보드카를 홀짝홀짝 마시다가 집으로 들어갔다. 그날 진숙이는 일요일 저녁에 나오는 코메디 프로그램의 개그맨처럼 여기가 어딘지 자기가 누군지도 모르게 취해서 들어왔다. 그런 일이 몇 번 반복되고 나서는 진숙이가 일하는 바에 놀러가지 않았다. 이후 진숙이가 술에 취해 들어오는 날은 점점 잦아졌고, 한여름의 재래식 화장실처럼 매섭게 더러운 그년의 진상 때문에 내 몸에는 손톱자국과 멍이 장마철 곰팡이처럼 번져갔다.

 

 그러면서도 나는 진숙이가 제 3세계 난민들이 굶주린 만큼이나 사랑을 갈구하고 있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곤 했다. 그래서 그 년이 아무한테나 가랑이를 벌려 주었던 것일까. 아니지 아니야. 이 놈이 나에게 사랑이라는 미끼를 던진다는 것도 모르고 불쌍한 낚시터의 잉어처럼 벌려주었겠지. ‘얘가 정말 나를 사랑하고 있는구나하고 그랬나보지.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그녀가 아는 남자들마다 저 놈과 잤을까 저 놈과는 틀림없이 잤겠지하는 생각을 했다. 어둡고 눅눅한 자취방에선 곰팡이 냄새가 살짝 났고, 나는 괜히 이를 갈며 자고 있는 진숙이의 뺨을 마구 때리고 싶은 상상만 부풀렸다. 그러다가도 연락 없는 핸드폰을 붙잡고 내가 아는 금세기 최고의 글로벌 호구 함 형처럼 씁쓸해하는 진숙이의 모습을 상상하며 괜히 슬퍼하곤 했다.


 진숙이가
MCM 가방을 철퇴처럼 휘두르는 날이면 꼭 다음날 머리맡에 삼 만원이 놓여 있었다. 나는 진숙이가 준 삼 만원을 꼬박꼬박 모아 목걸이를 하나 샀다. ‘Jinsook’ 섹스 앤 더 시티에서 주인공이 애지중지 하던 목걸이랑 똑같은 걸로. 그리고 가방 속에 있던 노트를 한 장 찢어 정성스레 편지를 썼다. ‘술 좀 작작 쳐 먹어라 바보야어느 새 아침저녁이 좀 선선해졌다. 어떻게 두 달이 지나갔는지도 모르겠다. 노식이형이랑 등산을 갔던 일이나 진숙이랑 불타는 정사를 나누던 시간들이 꿈만 같았다. 그렇게 진숙이와 연락을 끊고 새 학기를 맞이했다. 91일은 빨래를 널면 한 시간 만에 마를 것 같은 날이었다

 다음 화에 계속

공지사항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
링크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글 보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