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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 생존기

나의 직장 생활 이야기 3

프로매국노 2019. 1. 30. 19:20

이번편은 나의 직장생활기중 가장 다이나믹했고, 재미있던 이야기가 많은 헤리티지 호텔 데미 CDP로 대략 7개월여간 일한 경험을 써 보겠다. 


이야기를 시작하기에 앞서 인물평과 소개를 먼저 적어보겠다. 알고보면 더 재미있는 이야기들이니 각 인물의 특성과 성격을 미리 숙지하고 읽기 바란다. 


Executive chef - 제라드: 전형적인 키위 백인 아저씨다. 구글에 검색하면 인터뷰 하나정도는 나오는 사람. 190에 가까운 큰 키에 산만한 배를 가졌고 나름 목소리도 좋고 잘생겼다. 아시안 피버인지 마누라는 중국인이고 한국인 여자친구도 사귀어 봤다고 한다. 시티에 있는 NCIA인가? 하는 요리학교에서 교수로 일한 경력도 있다는 듯. 굉장히 이지고잉한 분위기로 가고, 급할때는 미친놈으로 변하지만 평소에는 그냥 왔다갔다 하며 훈수나 두는 나름 괜찮은 보스. 애가 다섯인데 혼혈이라 그런지 애들이 참 예쁘다. 


Sous chef - 제리: 나와 거의 의형제가 되다시피 한 중국인 수쉐프. 처음에는 굉장히 까칠했었는데 나름의 텃세가 아니었나 싶다. 중국 남자답게 섬세하고 친절한, 가끔 보면 푸씨같은 느낌도 있을 정도지만 한번 화가 나면 돌아버리는 녀석이다. 중국인 특유의 까까머리+큰 키와 덩치를 가졌음. 중국계라 그런지 의리 하나는 끝내준다. 나 지각할때마다 시간 조작 해주던 좋은 보스. 우리 키친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뉜다. 1층의 알라카르트 레스토랑 헥터스와 지하의 방퀫(연회)팀이다. 포지션은 수 쉐프이나 실질적으로는 헤드쉐프의 역할을 하고 있음. 내가 계란 10개 까서 각종 야채랑 치즈로 왕계란말이 만들어주면 그걸 그렇게 좋아했다. 요리 실력도 출중하고 안되면 되게하라는 정신을 가지고 있는데다 중국계통이다보니 심심한 스타일의 수프를 기가 막히게 잘 만든다. 주 섹션은 파스타, 라비올리 등의 핫푸드. 


Junoir sous chef - 리안: 마오리 계통의 혼혈 아줌마. 통통한 체격에 대략 40대 후반은 되어 보인다. 아래쪽 방퀫 키친의 수장을 맡고 있다. 요리실력은 의문이다. 호텔에서 거의 20년 가까이 일한걸로 알려져 있다. 가끔 같이 일하면 참 편하고 좋긴 한데, 사람을 푸쉬하거나 일을 완벽하게 하는 스타일이 아니다보니 조금 답답한 감은 있다. 


Senior CDP - 악쉬: 직속상사였기때문에 나름 애증이 교차하던 녀석이지만, 의리있고 괜찮은 녀석이다. 되려 처음엔 그렇게 이래라 저래라 하더니 친해지고 나서는 별 얘기가 없다. 내가 마음을 열고 대화할 수 있는 몇 안되는 인도인 중 한명이었다. 처음 브로! 이딴식으로 부르다가 나중에 와서 조용히 자기한테 쉐프라고 불러주면 안되겠다고 묻던 녀석. 뭐랄까 그쪽 출신이다보니 갑질하는걸 되게 당연하게 여기는 느낌이 있었다. 나중엔 결국 브로가 되었지만..ㅋㅋ 어쩌다보면 국산 냉동 고향만두같은걸 가끔 얻게 되는데, 그걸로 깐풍만두 해주면 환장하게 좋아했다. 이친구와 나, 제리 이렇게 세명이 거의 의형제를 맺은 느낌으로, 힘든 시기를 잘 버텨왔다. 덕분인지 되게 끈끈한 애정이 있었고 어쨌든 덕분에 배운 점도 많았다. 주 섹션은 그릴. 


CDP - 마크: 필리핀 출신의 대머리 쉐프. 타코야끼처럼 생긴 녀석이다. 삼겹살과 마늘, 디저트를 좋아한다. 처음엔 나와 같은 데미 포지션으로 들어왔지만 실제로는 수쉡이나 헤드쉐프를 해도 이상할게 없는 10년 경력의 훌륭한 쉐프였다. 특히 스테이크 소스를 만들때는 장난아님. 기본기나 실력의 깊이가 악쉬를 훨씬 능가하고도 남았다고 본다. 성격도 좋고 일도 잘하고 엄청 부지런한 친구였다. 덕분에 많이 배웠고 또 서로 존중해주며 재미있게 농담도 하고 잘 지냈다. 중간에 돈을 더 준다는 말에 릿지스 호텔로 옮겼다가 존나게 착취당하고 수개월 후 CDP로 포지션을 바꿔 다시 들어왔다. 삶의 여유와 가족들을 위해 돌아왔다고. 덕분에 이 친구가 일하는 도중 사진을 찍거나 그러면 '해쉬태그 릿지스' 이러면서 킬킬거릴 수 있었다.  


CDP - 에디: 조식팀의 수장. 유일한 인간이다. 조용하고 나긋나긋한 필리핀 악센트가 매우 재미있다. 당시 이 친구의 말투를 따라하다가 'very nice'라는 유행어를 만들게 되었다. 같이 일을 많이 하지 않았기 때문에 잘은 몰라도 여튼 일 열심히 하고 실력 있는 쉐프다. 


Demi - 라이언: 이친구도 필리핀 출신인데 이친구는 무식한데 잔꾀를 부리고 일은 별로 못하는 성격이었다. 다만 더러운 농담을 좋아하고 성격이 워낙 착하고 좋다. 처음에는 이친구가 참 많이 의지가 되었다. 나중에는 쓰레기였던걸 알게 되지만... 조그만 체형에 아이같은 얼굴을 하고 있어 나와 비슷하거나 나보다 어릴 줄 알았는데 서른일곱이라더라. 애가 셋인데 큰 애가 열일곱이라나. 현재는 비자문제때문에 골머리를 앓는 중. 


Demi - 나: 어쨌든 내 포지션에 대해서도 조금 설명은 해 줘야 할 것 같아서.. 일단 나는 처음 코미로 입사했다가 한달만에 데미로 승진을 했다. 뭐 일단 바닥 포지션이었지만 할건 다 했다. 핫푸드, 그릴, 라더 섹션을 넘나들며 활동했고 특히 라더 섹션을 시작하며 섹션의 시스템을 다시 짰다. 덕분에 반 방치상태였던 내 섹션은 상당히 훌륭해졌다. 다음으로 나는 거의 모든 일을 다 처리할 수 있는 상황이다보니, 재고상태에 대한 완벽한 이해가 있었다. 뭐 요리실력은 말할 것도 없고..ㅋㅋㅋㅋㅋ 우리 호텔이 비교적 한가한 편이다보니 어떤 음식을 만들더라도 항상 완벽한 퀄리티로 조리할 여유가 있었던 것 같다. 그런 디테일에 집착하도록 노렸했다. 업무 하반기에는 방퀫 팀을 도와주거나, 조식팀에서 일하거나, 스탭밀을 만들기까지 했다. 전 직장의 헤드쉐프인 닉에게 배웠던 점은, 어떤 상황에서도 유머감각과 여유를 잃지 않는 것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항상 즐겁게 일을 하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그리고 나는 글을 쓰는 것보다는 말을 더 잘하는 편이다. 


Demi - 미카: 삼십대 중후반의 작은 일본인 여자 쉐프. 조식섹션만 몇년을 했다는 것 같다. 요리와 영어실력은 씹창인데 일은 정말 일본인같이 열심히 하는 스타일이었다. 내가 일을 시작할때는 얘가 일이 끝날때가 다 되어 가니, 얼굴 꼴이 말이 아니다. 그것때문에 200살은 되어보인다고 몇번 놀렸더니 페이스북 친구를 끊어버린 적이 있다. 그렇다고 좌절할 내가 아니었다. 사과 한번 제대로 한 뒤, 다른 애들 만날때마다 상황설명 하고 얘가 나 페친 끊었다고 또 엄청 놀려댔다. 그러다보니 다시 나에게 페친을 걸어 주더라. 그래도 나름 서로 잘 지내고 얘기도 많이 하고.. 또 보다보면 뭔가 좀 애잔한 구석이 있는 친구(사실 누나였지만)였다. 


Demi - 아툴: 피지 인디안 계열의 노땅 아재. 그쪽 특유의 약간 거칠고 무식한 분위기가 있으며 실제로도 개 빡대가리다. 0.5인분정도 되는듯. 영어도 잘 못하고 말은 존나 많고 자기가 뭔 얘기를 하는지 모름. 이사람도 여기서만 25년인가 일했다던가. 카운슬에서 위생검사 나왔을때 그쪽 사람이 '온도계 상태를 어떻게 체크해야 하는가'였는데, 당시 모범답안은 끓는 물과 얼음 물에 체크해서 90도이상, 0도 근처가 나오면 정상이다 라는 답변을 했어야 하는데, '전원을 켜보고 안되면 배터리를 갈아끼우면 된다.'는 명언을 남겼다. 내가 스탭밀을 하던 시절 스탭밀을 괜찮게 만들다 보니 내 음식을 엄청 좋아했다. 


commis - 러셀: 거의 4년인가 5년을 방퀫에서 일했는데도 코미에 머물러있는 병신. 처음 몇달간은 알라카르트에서 하다가 힘들어서 방퀫으로 옮겼다고 한다. 참고로 게이다. 옷도 게이같이 입고 글씨쓸때 도트를 쓸 상황에 하트를 그린다. 일 존나 못하고 삐지기도 잘하고.. 간도 ㅅㅂ 하나도 안맞고... 왜 사는지 모르는 새끼다. 


commis - 잭키: 홍콩출신의 큰 뚱뚱이. 절망스러운 책임감과 요리실력을 가지고 있다. 6년여간 스탭밀을 만들었는데 여전히 간도 하나도 안맞고 향신료도 하나도 쓸 줄 모르고... 여튼 얘도 왜 사는지 모르는 개병신새끼. 특히 요리를 너무 못하고 일하는 시간은 대충 때워두고 남는시간에 핸드폰 게임만 줄창 하는 새끼라 내가 정말 싫어한다. 최근 부모님께 거액의 재산을 증여받아 신차 뽑고 대충 살고 있다고 한다. 유행어는 'I don't know, not my business.' 


commis - 휴버트, 빈센트: 휴버트는 마른 체형의 중국인이고 빈센트는 작은 곰돌이같이 생긴 녀석이었다. 둘다 개병신돌대가리였고 일도 참 좆같이 못했다. 학교의 인턴쉽으로 무급으로 잠깐 일을 했었음. 볼때마다 내가 존나 농락하고 그랬던것 같다. 


페스트리 CDP - 무스타파: 뭐랄까, 나보다 한살 어린 주제에 머리가 지단처럼 죄 까져서 지단이라는 별명을 붙여줌. 요르단에서 온 중동 무슬림이다. 유머감각 하나는 끝내주던 녀석이었다. 나중에는 나와도 매우 친해져서 중고차 사는법 강의 등을 많이 해줬고, 그러다보니 나중에 함께 중고차 사업을 하자던 얘기까지 오가던 상황. 이친구가 뭐만 하면 내가 너 알라한테 기도했냐, 그 음식 할랄이냐 그런식으로 사사건건 농담을 주고받곤 했다. 


페스트리 commis - 조앤: 캄보디안 키위 여자아이였다. 그쪽 출신 답게 아주 작고 조금 귀엽게 생긴 스타일이었는데 대가리도 작아서 그런지 뇌용량이 적은지 여튼 빡대가리에 일도 별로 잘 못하는 애였다. 얘도 만날때마다 내가 사사건건 장난치고 괴롭히던 재미가 있었다. 


Demi - 제니: 필리핀 출신의 원숭이 같이 생긴 여자 쉐프. 전에 업장 경력이 있었다고 하는데 일 하는 거 보면 그냥 생 초짜다. 내 후임으로 들어왔는데 일을 정말 병신같이 못했고 섹션에 있는 음식은 종종 상해있거나, 병신같이 썰어둿거나, 간이 좆같던가 여튼 음식 정말 못하는 병신 돌대가리였다. 특히 내가 매일 얘기하는 것들에 대해 놓치고 일도 느리고 해서 정말 좆같이 갈구면서 같이 일했다. 지금은 내가 없어서 행복할듯. 


견습생 - 트리스틴: 일 하던 도중 사라진 뒤 창고에서 잠을 자다 발각되었다는 녀석이다. 키친 핸드에서 견습생 과정을 밟고 있고, 여기 견습생 과정을 몇년 받고 서류작업을 좀 하면 학력 인정이 되는 시스템이 있는데, 지금은 견습도 망하고 그냥 키친 핸드로 돌아갔다. 쓰레기같은 새끼. 


키친핸드 - 토니: 아헤가오 티셔츠를 입고다니던 병신 오타쿠 새끼. 작고 깡마른 체구에 두꺼운 안경을 쓴 전형적인 너드 오타쿠였다. 롤 마스터였다나 뭐라나. 전에 일 적당히 하고 뺑끼치다가 제리한테 걸려 하루 종일 갈굼당하고 눈이 그렁그렁 했던 이야기가 있다. 러셀과는 불알친구다. 다만 게이는 아니라고 한다. 


키친핸드 - 브레나: 정말 암담한 병신. 키도 작고 이상하게 하체만 존나 뚱뚱한 여자애인데, 두꺼운 뿔테 안경을 끼고 있고 머리가 정말 나쁘고 일을 정말 못했다. 


초반기 


 지금 돌이켜보면 일의 시작은 별로 쉽지 않았던 것 같다. 일단 우리 다이닝 알라카르트 팀을 정상 쉬프트대로 돌리려면 5명의 쉐프가 필요했다. 당시 고정 쉐프는 라이언, 제리, 악쉬 3명. 다행히도 남은 인원은 일당 쉐프로 충원할 수 있었다. 엄밀히 따지면 정말 좋은 상황이었다고 생각된다. 나는 라더섹션에서 일을 시작했고 당시 내 사수는 라이언이었다. 영어는 못했지만 친근하고, 친절한 녀석이었기에 같이 일하는게 참 좋았다. 다만 그 녀석이 쉬는날일때 나는 일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다시 말하면 인수인계를 제대로 받지 못한 상황이었다. 제리의 경우는 라더섹션에 대한 이해가 충분하지 않았고, 기타 서류 업무 등으로 바쁜 상황이었고 악쉬는 휴가중이었다. 남은 인원은 일당 쉐프로 충원되었으니 우리 레스토랑이 별로 바쁘지 않은 곳이었기에 망정이지 만약 약간이라도 바쁜 곳이었다면 매일 매일이 고통이었을 것이다. 


 본격적인 일은 악쉬가 휴가를 끝내고 나서부터 시작되었다. 대략 일주일에서 보름간 배워던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해야 했다. 왜냐하면 라이언이 나에게 모든걸 다 좆같이 알려줬기 때문이다. 처음 악쉬에 대한 인상은 별로 좋지 않았다. 일단 말이 많았고 나에 대한 믿음이 제리나 악쉬나 부족했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약간의 텃세가 있지 않았나 싶다. 다만 한달정도가 지나고, 내가 일을 어느정도 쳐 내기 시작한 상황에서는 조금씩 서로에 대해 이야기하고 우정을 쌓을 수 있는 상태가 되었다. 내가 일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마크가 새로 들어왔고, 라이언을 제외하고 걸출한 실력을 지닌 5인의 팀이 구성되었다. 다만 그 이후 바로 마크가 이직을 하게 되었고 4인팀과 일당쉐프들을 끼워 중반기는 약간 힘들게 되었던 것 같다. 


 우리 레스토랑은 이탈리안-키위 베이스의 비건, 다이어터리 프렌들리의 양식 레스토랑이었고 메인과 각종 고기, 생선등을 다루는 그릴, 생 파스타와 라비올리등의 메인과 온트레이를 다루는 핫푸드, 디저트, 샐러드, 피자등을 담당하는 라더와 플레이팅을 도맡는 패스의 네 섹션으로 나뉘었다. 제리는 핫푸드와 패스, 악쉬는 그릴과 패스, 마크는 그릴, 라이언은 라더와 핫푸드, 나는 로스터 상황에 따라 모든 섹션을 오갔고, 제니는 라더 섹션만 배웠다. 


중반기 


 본격적으로 일을 쳐내면서 정말 미친듯이 일했었다. 모든 것을 내 방식대로 바꾸고, 냉장고, 드라이스토어등을 재정비하고, 짬짬이 서류작업 하면서 시스템 다시 짜고, 내 섹션을 어느정도 마스터 한 이후에는 핫푸드와 그릴을 넘나들며 같이 일했다. 당시 나보고 할줄 아냐?고 물었을때, 난 그냥 어깨넘어로 대강 배운 식과 원래의 스킬로 일을 했다. 여기서부터 제리나 악쉬가 나를 보던 시선이 확 바뀐 것 같았다. 게다가 짬짬이 생기는 부페, 9코스, 11코스등의 연회등에서 보스인 제라드는 그저 종이로 된 메뉴판과 간단한 브리핑을 주는게 전부였다. 그의 아이디어를 구상시키는 실제적인 일은 제리나 악쉬가 도맡아했고, 거기에 나도 종종 껴서 일을 배우고 때로는 조지고, 주로 성공시키며 일을 했던 것 같다. 게다가 우리 호텔이 비건, 다이어터리등에 특화된 레스토랑이다보니 매주마다 비건 3코스+어뮤즈부쉬의 '비건 먼데이'라는 행사가 있었다. 일식의 회석요리등에서 아이디어등을 많이 따와 즐겁게 할 수 있었다. 


 이때까지 나는 양식 쉐프란 무엇인가, 혹은 어떻게 경력과 실력을 결정짓는가에 대한 고민을 참 많이 했던 것 같다. 어떻게보면 일식의 도제식 혹은 서열식 문화에 아직까지 마음을 잠식당했던게 아니었다 싶다. 그도 그럴게 일식집에 들어가면 보통 서열에 따라 하는 일이 확 나뉜다. 막내는 주로 야채손질, 잡일등을 하고 대리,주임급으로 올라가면 칼판, 간데기등의 기초를 배운다. 이후 과장급이 되면 회, 초밥등을 하거나 뒷주방에서 요리를 좀 더 본격적으로 하고, 부장이 되면 보통 앞다이나 뒷다이를 도맡아 한다. 실장이면 주방장, 셰프 등등으로 불리기도 하는데 주로 핸드폰을 보거나 앉아있고 여직원을 희롱하거나 설거지, 이모들과의 대화 등등.. 참 많은 일을 하는 바쁜 직책이다. 물론 대장이면서 묵묵히 앞다이나 뒷다이에서 일하시는 훌륭한 쉐프님들이 더 많다. 아랫쪽 사원 입장에서는 부장까지는 좀 무서워도 실장들이 가끔 와서 뭐라하면 그냥 답답한 꼰대가 또 지랄하네.. 뭐 이런식으로 넘기는 분위기랄까. 그렇다보니 배우지 않은 일을 해도 될까 라는 식의 걱정이 있었다. 답은 그냥 하면 됀다였다. 그냥 하면 돼는데 대충 하는게 아니라 쩔게 하면 돼는거였다 랄까. 여기서 여태까지 대략 5년간 했던 경력의 모든것을 보여줄 수 있었다고 본다. 그도 그럴게 시스템이 확실하게 짜이지 않은 유동적인 코스나 연회 등에서는 그야말로 개인의 실력이 전부였기 때문이다. 메뉴에만 있는 판에 박힌, 수백번 수천번을 연습했던 요리들은 아주 쉽다. 매일 보고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뜬금없이 시금치 그라데이션이 들어간 생 라자냐와 비건 라구 소스를 만들라던가, 비건 에스프레소 무스를 만들라던가 이런 식으로 갑자기 위에서 오더가 떨어지면 그냥 해야 했다. 내게 모자랐던 역량은그런 부분이었다. 타인의 방식에 대해 걱정하지 말고, 일단 내가 알고있는 기본기를 통해 최대한 하고, 잘 안되면 한번 물어보고, 그렇게 내 요리를 하는 것이었다. 


 이때부터는 제리나 악쉬가 나에 대해 모든 편의를 봐 주고 정말 친하게 지냈던 것 같다. 또한 라이언이 0.5인분에 불과하므로 우리의 전력은 3.5명이었고 일당 쉐프의 경우도 거의 0.5인분의 일을 했던 것 같다. 그렇게치면 4명이서 5명 일을 항상 쳐내야 했고 주로 나와 악쉬가 1.5인분의 일을 나눠서 해야 했다. 마크가 돌아오기 직전까지는 그랬다. 바쁜 일이 있거나 뭐가 터지면 항상 세명이 머리를 맞대고 아이디어를 짜냈고, 힘들어 보이는 일들도 상당히 수월하게 쳐낸게 많다. 또한 그렇게 힘든 시기를 거쳤기에 더욱 끈끈한 유대를 빚어낼 수 있었던 것 같다. 


 또한 일에 있어서는 미스 호라는 개 병신같은 씨벌년을 빼먹을 수 없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호텔의 역사를 알아야 하는데, 호텔의 창립자는 싱가폴계 자본가였다. 그사람이 다이너스티 그룹을 만들고, 그룹 산하에 뉴질랜드 내의 몇몇 헤리티지 호텔이 있다. 그리고 지금 창립자는 뒈져서 없고 그 아들내미가 병신같은 그룹의 총수를 맡고 있다. 그리고 그 아들의 마누라가 미스 호다. 왜 미스냐면 미세스가 되려면 자기 성씨를 버려야 하는데 그러기 싫어서라고 한다. 이년의 문제는 종종 뉴질랜드를 놀러 오는데, 오면 꼭 우리 호텔에 묵는다. 그냥 묵으면 되는데 꼭 씨벌 매일 저녁을 새로운 비건 3코스 이상으로 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렇기때문에 이년이 한번 오면 호텔이 들썩이는 수준의 이슈가 되고 모두가 스트레스를 받는다. 비건이면서 오지게 깐깐한데, 본인이 실무에 관한 역량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모든걸 본인 입맛에 따라 지랄하기 때문에 더 좆같다. 특히 우리 레스토랑의 경우는 가장 바쁜 시간대에 음식 관련된 콜을 받고 또 음식에 대해서도 정말 좆같이 디테일 따지고 물고 늘어지기 때문에 항상 모든 신경을 곤두세워야 한다. 말하자면 당장 손님들 와도 기다리라고 하고 그 병신같은년 먹이를 만들어야 하는 상황이 된다. 그렇다보니 정말 도움이 하나도 안돼고, 올때마다 그냥 좆같기만 한 존재다. 


후반기 


후반기에는 마크의 귀환, 제니의 등장 등으로 사실상은 호재였으나 제니의 상상을 초월하는 형편없는 요리실력과 멍청함때문에 머리가 더 아팠던 것 같다. 처음에는 괴롭혀도 보고, 풀어줘도 보다가 나중에는 그냥 다 포기하고 노가다나 시켰다. 마크가 있었던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나는 레스토랑에서 날아다니다가, 일을 너무 잘하게 된 나머지 스탭밀, 조식 등으로 일주일에 두세번씩 파견을 나가곤 했다. 조식 팀에서야 뭐... 아침에 출근해서 계란후라이 두장, 소세지, 과일 등등으로 밥이나 대충 먹은뒤 담배 한대 피고 시키는 일이나 대강 대강 하는 식으로 편했다. 또한 스탭밀의 경우는 우리 알라카르트 팀의 자존심을 걸고 코스트에 맞는 재료로 향신료, 자투리등을 최대한 이용하여 저렴하고 맛있는 음식을 만들기 위해 엄청 노력했던 것 같다. 알라카르트의 경우는 가끔 일하니 제니나 갈구고 할일 하고 비건 먼데이 하면 아이디어 내고 그랬던 것 같다. 후반기의 경우는 거의 모든 파트에서 일하다보니 애들이 얼마나 잘 하는지 혹은 병신같이 하는지 등등의 첩보활동을 주로 했다. 아래층 친구들과도 많이 친해졌고 뭣보다 잭키 씨박새끼가 일을 얼마나 좆같이 하는지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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