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이와의 만남은 며칠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때 난 술에 취해 있었다. 그리고 내가 지금 세상에서 가장 고독하고 불행하며 스스로를 파멸로 이끌어버리고 말았다는, 비장한 비참함에 더욱 심취해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벌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벌이라는 건 기껏해봐야 노숙 정도였지만, 정말 안타깝게도 며칠째 비가 내렸기 때문에 제법 쌀쌀하던 9월의 밤이었다. 나는 학과 자료실의 1인용 쇼파에 앉아 잠을 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문을 연 순간 그 쇼파에는 조금 예쁜 티벳여우 한마리가 앉아있었다. 정확히는 그렇게 생긴 아가씨였다. 그녀는 창밖을 보며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누군가 들어온 것에 살짝 놀란 그녀는 담배를 한모금 빨고 쭈욱 내쉬며 천천히 고개를 돌려 나를 노려봤다. "안녕.""안녕..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2학년 1학기는 그녀와 만나는 날만 기다리며 지냈다. 그녀와 헤어지고 난 뒤엔, 또 다음에 만날 시간을 기다리곤 하면서 3개월을 하룻밤사이의 꿈같이 보냈다. 방학때는 서로 아르바이트를 하며 떨어진 순간을 아쉬워했고, 그리고 그 해 가을, 우리는 다시 만났다. 일이 힘에 부쳤는지 약간 헤쓱해진 은지의 볼을 쓰다듬어보니 그동안 난 왜 그렇게 이 아이를 어려워했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손을 잡고 한강 둔치의 산책로를 걷다가 예산낭비의 집대성처럼 생긴 운동기구들 사이에서 콕 박혀있는 벤치에 앉았다. 그리고 맥주를 마시며 방학동안 있었던 이야기들을, 정확히는 너에게만 하고 싶었던 이야기들을 바둑알처럼 건넸다. 오래간만에 만난 은지는 여전히 귀여웠고, 그녀가 귀엽게 느껴지는 만큼 나는 ..
그날 은지는 빨간 코트와 허벅지까지 달라붙게 내려오는 쥐색 니트, 그리고 검정 스타킹을 신고 있었다. 난 갑자기 그 검정 스타킹을 벗겨보고 싶어졌다. 그런 생각이 들자 나도 모르게 문을 쿵쿵 두드리고 똥이라도 마려운 듯 발을 굴렀다. 천천히 문을 연 은지는 파란 물방울무늬 파자마를 입고 있었다. 내가 호흡을 가다듬는 동안 은지는 화장을 지우고 나왔다. 통통하고 뽀얀 얼굴이 앳된 고등학생같이 보였다. '이것도 나름대로 나쁘진 않군.'이라는 생각을 하며, 나는 봉지를 아무렇게나 집어 던진 뒤에 옷을 벗었다. 살짝 당황한 은지의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오려는 것을 내 혓바닥으로 막자, 그녀는 살며시 눈을 감고 코끝에 걸린 신음소리를 냈다. 나는 전부터 그래왔던 것처럼 얇은 파자마 속으로 내 두툼한 손을 집어 넣었..
다시 혼자가 된다는 것은 분명 익숙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이전에 생각했던 것보다 유독 낯선 기분이었다. 한시도 빠짐없이 붙들고 지내던 휴대폰의 잠잠함, 그리고 무료함, 무엇보다 내가 필요할 때 나와 섹스해줄 누군가가 없다는 것은 내 인생의 가장 큰 고통이었다. 그럴 때마다 난 컴퓨터를 켜고 이름모를 남녀의 2차원적인 정사를 관람했다. 그리고 올챙이 같은 것이 군집된 희멀건 액체를 쭉쭉 뽑아냈다. 담배를 피우고 한숨을 소화기처럼 뿜은 뒤에는 옛날 영화를 보곤 했다. 어느순간부터 난 서양 남성과 동양 여성의 영상물을 모았다. 혜림이는 키가 큰 남자를 좋아했으니까 분명 길쭉한 서양인을 만나지 않을까. 그리고 그놈은 마음 속으로 혜림이를 쉬운 여자로 보겠지. 혜림이는 그것도 모른채 그놈의 그 핫도그..
혜림이가 자신 속에 품고 있던 미친년의 존재는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분명 평소에는 상냥하다 못해 내 눈치를 살피기 바쁘고, 심지어 어떤 로맨틱한 순간에는 부끄럽다며 내 얼굴마저 제대로 쳐다 보지 못할 때가 있는 귀여운 아이인데, 도대체 왜 내 일거수일투족에서 자신이 납득하지 못하는 일만 생기면 괴물로 변하는 것일까? 나는 여성의 질투나 집착, 혹은 남자의 지나친 남성 우월주의적 사고가 보통 그들이 지닌 열등감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혜림이와 열등감은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난 그냥 평범하게 생겼을 뿐이지만, 혜림이는 인기도 많고 꽤 예쁜 편이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공부도 잘했다. 그렇다면 그녀 또한 본인조차 감당할 수 없는 육중한 열정과 감정을 지닌, 과거의 나 같은 존재가 아니었을까? 그래도 ..
사실 그 당시의 쓸쓸하고 처량한 내 마음은, 고기보다 영혼을 위한 홍합 수프 같은 것이 필요한 순간이었다. 그건 그렇고, 어쨌든 간에 진정 뜨거운 섹스는, 정말 재미있는 사랑은, 똥통에서 재림한 예수처럼 나타나야 제맛인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며 난 샤워를 하고 머리를 말린 뒤에 단정한 옷을 입고 향수까지 두번 뿌린 다음 그녀를 만나러 갔다. 그녀는 눈빛으로 말했다. '꼭 그렇게까지 했어야 하느냐고.' 그리고 나는 그런 눈빛으로 말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걸 어떡하냐고.' 살짝 들떠있는 채 고기를 구우며 내가 입을 열때마다 빛나는 눈으로 날 바라보고 미소지어주는 그녀의 모습에서, 난 무언가가 시작되었다는 확신이 들었다. 각자 소주를 한병씩 마시고 어느 정도 취기가 오르자, 난 너에게 꼭 보여주고 싶은..
나는 여자들이 참 웃긴 존재라고 생각한다. 그녀들은 어떤 상황 속에 자신을 가두는 것을 좋아하며, 항상 자기합리화에 강하다. 이 두 가지 강점을 통해 여자들은 만약 자신이 원전 폭발 사고보다 무지막지한 쌍년이 되더라도 어떻게 해서든지 자신을 피해자로 만드는, 일종의 연금술보다 위대한 심리적 작용을 스스로 가하곤 한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접근해보자면, 난 여태껏 진심으로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는 여자를 본 적이 없다. 항상 그런 식이다. '나도 잘못을 하긴 했는데~'로 시작되는 그 거짓 고해성사는 항상 자신이 설정한 어떤 괴상한 선악과와 아주 나쁜 뱀의 유혹에 의해 마무리되곤 했다. 잘못의 방향성을 무조건 외부로 돌리려는 언 발에 똥 싸기보다 못한 구질구질한 변명에 불과한 것이다. 여자들은 18세기 프랑스..
'도대체 이게 무슨 시츄에이션?'이라는 느낌이 뇌에서 다듬어지기 이전에 나는 재빠르게 그녀를 위에서 안고 키스를 하기 시작했다. 딱딱한 고추가 그녀의 허벅지를 눌렀다. 그녀는 살짝 웃었고, 나의 혓바닥은 원숙한 복서처럼 그녀의 입속 이곳 저곳을 찔러대고 있었다. '내가 얘랑 지금 뭘 하는 걸까?'하는 생각이 명확해질 때는 이미 신나게 방아를 찧던 순간이었다. 살과 살이 맞닿는 소리는 총소리와 어우러져, 총격전이 벌어지는 시가지의 간이 화장실에서 섹스를 하는 젊은 커플이 된 기분이 들었다. 딱 그런 느낌으로, 나는 그녀의 허리를 꼬옥 잡고 내일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단 한번의 사정을 하겠다는 기세로 정점에 다다르고 있었다. 격정을 느끼고 있는 그녀가 리듬에 맞춰 앵무새같은 신음을 냈고, 나는 하반신이 뜨겁게..
그 일이 있은 후, 난 완전히 삶의 의욕을 잃었다. 그나마 나의 가슴속에 미미하게 남아 있던 불꽃 하나는 그저 비참함이었다. 난 비참했다. 벼락을 맞은 듯이 사랑을 잃고 성병까지 걸려버렸다. 물론 성병은 보름 만에 완치되었지만 사랑을 잃은 것은 그렇지 못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이제 선미 같은 애는 어떻게 되든 좋았다. 이제 나와는 아무 상관 없으니까. 그런데 계절이 바뀔 때마다, 그녀와 함께 걷던 길을 걸을 때마다 문득 드는 생각에 씁쓸하면서도 속이 아련해 오는 것은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그게 날 힘들게 했고, 나를 더욱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남은 여름과 가을, 그리고 초겨울 내내 한 일은, 자장면 배달 하는 친구를 따라 밤에 오토바이를 타고, 주유소에서 기름 넣는 친구와 놀며 고구마를 구워 먹다가..
우리는 여느 때와 같이 가끔은 다투고, 때로는 미칠 듯이 서로를 갈구하며 지냈다. 중요한 모의고사가 눈 앞이었지만 그것보단 유원지나 영화관에 가는 것이 더 중요했고, 그녀의 손을 잡은 채 언젠가 우리는 어떻게 되어 있을지 상상해 보는 게 더 좋았던 시절이었다. 사실 공부를 그렇게 잘 하는 편도 아니었고, 그녀의 경우는 전문대도 턱걸이로 들어갈 수준이었다. 가끔 시험을 보고 우울해하는 선미 앞에서, 나는 널 어떻게든 먹여 살릴테니 밥하고 빨래나 잘 해달라며 허풍을 떨곤 했다. 그땐 정말 그렇게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녀를 위해선 섬노예 생활도 견딜 것 같았고, 하다못해 사지를 자른뒤 서커스를 하라고 해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고추만 떼지 않는다면, 정말 난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난 이별이라는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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