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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싫지는 않은데, 딱히 좋지도 않다는 말. 남자들은 이런 말을 가장 조심해야 한다. 혹여나 사랑을, 쟁취해야 하는 것이라 생각한다면, 당신은 그 사랑이라는 브라질 수탉 성기만도 못한 게 애초에 어느 곳에 머무르거나, 혹은 누군가에게 쟁취당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인지 아닌지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 그때의 나는 그걸 몰랐다. 나는 밤을 새워 가며 또박또박한 손글씨로 A4용지 십여장의 편지를 쓰고, 학을 접고, 개구리를 접고, 한 달에 삼만원씩 받던 용돈과, 그것보다 코딱지만큼 많은 점심 값과, 몇 번의 차비를 모아 그녀가 좋아하는 화장품이나 액세서리 등을 사 주곤 했다. 그러니까 다시금 말하건대, 사랑이란 절대 쟁취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 성격을 지닌 것이 아니다. 사랑같은건, 그저 사랑하는 약자와 사랑받는 강자가 교차하는 허상 속에서 서로 속고 속이는 연기의 연속이고, 서로 손해보기 싫은 장사를 한번 해보려다가 한쪽만 왕창 손해를 보고 말아 버리는 장사에 불과하다. 그리고 어떤 방식으로든간에, 분명 언젠간 끝이 나게 마련인 법이다. 그건 그렇고, 대략 한달 여간 이어진 나의 노총각 홀어머니 모시듯 하는 갸륵한 정성과 앤디 훅도 울고 갈 불굴의 집념에, 선미는 어두운 공원의 벤치에 앉아 조심스레 나의 손을 잡아주었다. 그리고 나를 지긋이 올려다 보았다.
"내가 그렇게 좋아?"
"응."
"뭐가 그렇게 좋아?"
"그냥, 좋은데 이유가 필요할까? 하나씩 말하려면 끝이 없어. 아마 이박 삼일 동안은 들어야 할걸?"
지금 와 생각해보면 차라리 그렇게 말할걸 싶었다. '널 보면 존나게 꼴리거든.' 비록 로맨틱하진 못한 대화겠지만, 그것만큼 명백한 대답이 또 있으랴. 그래, 앞으로는 여자를 만날 때 그런 방식의 고백을 해야겠다. 똥을 똥이라 부르지 못하고 오줌을 오줌이라 부르지 못하는 삶은 나에게 더이상 의미가 없다. 상대의 단점도 장점으로 생각하려 했던, 네 장점또한 옳고 네 단점또한 옳다고 할 법한 하이퍼 황희정승식의 연인 합리화라는 것이 당신, 혹은 과거의 내 생각만큼 아름다운 일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우리는 그렇게 작은 웃음거리가 될 법한 소소한 연애를 시작했다. 말하자면 학교가 끝나고 선미의 손을 잡고 집까지 바래다 주는 일이나, 짬짬이 이야깃거리도 안될 편지를 주고 받거나, 점심시간에 학교 앞으로 나와 아이스크림을 함께 사 먹는 정도였다. 약간은 익숙하면서도 여전히 부끄럽고 조금 많이 가슴이 뛰는 밤이었다. 그녀의 집까지 남은 가로등은 고작 세 개. 서운한 발걸음은 태연한 듯 계속되었다.
"주말에, 우리 집에 놀러올래?"
"주말에? 부모님은?"
"엄마랑 아빠랑 시골에 할머니 뵈러 가신대서, 난 집에서 공부 한다 그랬고."
나는 다물어지지 않는 입을 간신히 오무리고 그렇게 하자고 말했다. 웃는 것도 아니지만 딱히 엄청 좋은 것도 아닌 것처럼 태연하게 있었다. 그리고 그녀가 손을 흔드는 것을 본 뒤에 킹 오브 파이터의 루갈 번스타인처럼 껄껄거리며 집까지 달려왔다. 섹스를 한다. 아니 안 할지도 모른다. 그래도 혹시나 하게 될 지도 모른다. 아, 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순간인가. 아버지, 어머니, 감사합니다. 조상님, 부처님, 예수님 저를 태어나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짙은 봄의 촉촉함이 밴 향기로운 밤이었다. 몸은 땀에 흠뻑 젖어 있었고 숨은 찼지만 전혀 힘든 느낌이 들지 않았다. 그리고 삼일간, 불알의 주름이 지워질 정도로 열심히 몸을 닦았다. 토요일 아침엔 아버지의 스킨과 향수를 뿌렸다. 몸에서 아저씨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여자도 몇 번 만나 봤고, 원나잇 같은 것도 해 보고, 마음이 안 맞으면 헤어지기도 하고, 슬플 땐 독한 소주 한잔과 담배로 마음을 달래는, 그런 아저씨가 된 기분이었다. 학교 수업은 어떻게 끝났는지도 모르겠다. 선미와 함께 아파트 단지 안의 분식점에서 탱탱 불은 떡볶이와 냄새나는 순대를 먹고 나는 잠깐 상가 화장실에 들어갔다. 앞니 사이에 낀 고춧가루를 손톱으로 빼 꼭꼭 씹고 머리와 옷깃을 한번씩 만진 다음에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상큼하고 풋풋한 표정을 지은 채로 나와 작고 부드러운 선미의 손을 잡았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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