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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마이애미 비치

마이애미 비치 (3)

프로매국노 2013. 5. 1. 00:25

 선미의 집은 4층의 아파트였다. 남의 집에 들어갈때마다 느껴지는 낯선 냄새. 선미에게 나는 냄새였다. 어떤 가족의 분위기가 무겁게 녹아있는 그 곳에서, 나는 낯선 가구들을 눈으로 익히고, 선미의 방을 구경하고 같이 쇼파에 앉아 TV를 보다가 선미의 따듯한 무릎을 베고 누워있었다. 


 "그러니까, 그게 문제야. 누가 대학에 가고 싶어하겠어? 놀고 싶은 거야. 연애도 하고, 여행도 하고, 자기가 뭘 잘하는지 알아보는, 그런 시간을 갖고 싶은 거야. 죽어라고 공부해 놓고 또 공부를 하기위해 공부를 한다는게 말이 돼? 그런데도 가서 놀아라, 그런 말이 얼마나 우습겠니? 아마도 그럴 것 같아. 대학교 가면 졸업하고 난 다음에 하고 싶은 일을 하라고 할테고 졸업을 한 뒤엔 취업을 하고나서 뭘 해야 하겠지. 정작 그렇게 살다가 어느 순간 이게 아닐 때,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하는걸까?"

"그렇지, 우린 갈 데가 없는 것 같아. 어쩜 넌 그렇게 말도 잘하니?" 


 날 편안하게 내려보는 선미의 눈이 반짝였다. 난 처음 그녀의 다리를 만났을 때, 그걸 쥐어보고 싶었던 충동으로 그녀에게 입술을 맞췄다. 종소리가 난 정도는 아니지만 정말 달콤했다. 꿀 같이 끈적하거나 콜라처럼 앙칼진 달달함이 아닌, 카스테라같이 부드럽고 포근한 입술이었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그녀의 허리를 감고 옷 속에 슬며시 손을 넣었다. 연한 살결의 감촉과 그 순수한 감동이 나일강처럼 범람하는 순간이었다. 떨림은 멈추지 않았고 나는 마치 그래야 할 것처럼 그녀와 입술을 맞댄 채로 옷을 벗었다. 처음 만났던 그 느낌 그대로, 손을 대는 것마저 범죄라고 느껴질만큼 아름다운 몸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고, 나의 똘똘이는 '형님 저 죽을 것 같습니다. 어떻게 좀 해주세요.'라고 말하듯 나의 하반신을 압박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가 팬티를 벗던 그 순간. 나는 한쪽 발을 천국에, 한쪽 발을 지옥에 딛은 채 왼쪽의 불알이 하얗게 빛나고 오른쪽의 불알이 검붉게 변하면서 천국으로 가야할지 지옥으로 가야할 지 모르게 된 고추와 같은, 그런 심경이 되었다. 그건 분명히 어떤 냄새였다. 축축하고 비릿하며 어떤 병적인 느낌마저 들게 하는, 맹독을 품은 오징어를 홍어처럼 삭힌 것 같은 냄새였다. 그것은 그 성스러운, 길쭉한 것이 들어갔다 나오길 반복해야 하는 그곳에서부터 문틈을 비집고 뿜어져 나오는 생화학 무기처럼 다가왔다. 참아야 한다. 참아야 하느니라. 일단 하고 보자는 생각에, 나는 촉촉한 그곳에 내 똘똘이를 깊이 집어 넣고 다시 살짝 빼고, 다시 깊이 집어 넣는 일을 조금 빠르게 이어갔다. 아름다웠던 그녀의 몸이 활처럼 휘고, 낮고 높은 교성이 몇 번 반복되며, 내 위에 올라탄 그녀를 다시 쇼파에 엎드리게 해 놓고 베란다의 풍경을 감상하며 뒤로 하던 장면들이 꿈처럼 지나갔다. 그리고 속옷만 입은 채로 쇼파에 함께 누워 얕은 잠을 자면서, 그 정체불명의 냄새는 나에게 아침처럼 다가왔다. 도대체 이건 뭘까. 원래 그런건가? 아니, 그래도 이건 좀 심한 것 같은데. 그래 좀 심하잖아. 분위기를 확 깬다고. 그래도 참아야겠지. 내가 사랑하는 여자니까. 절대 말해선 안되겠지, 그녀에게 상처가 될 테니까. 그런 생각을 하며 축축하게 나를 바라보는 선미의 모습을 상상하니 가슴 속을 면도칼로 헤집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니까 대개 그런 것이었다. 너무나도 익숙하고 적극적이었던 그녀의 모습이나, 어느날 밤은 갑자기 연락이 안되다가도, 다음 날 아침이면 아무렇지 않은 듯 내게 웃어 보이는 모습. 친구들과 게임도 못 하게 하고 자신만을 끊임없이 바라봐 주길 바랬던, 나약한 듯 하면서도 남이라 치면 악독했던 그런 모습들. 그 앞에서 나는 진정한 순정 마초가 되리라고 결심하고 다시 결심하고, 그런 다음에 또 결심하곤 했다. 내가 그녀를 사랑해주는 만큼, 내가 하고싶은 것을 하나 둘씩 포기하는 만큼, 그녀가 나의 더 큰 애정을 얻고, 또 그렇게 되는 만큼 우리의 관계는 더욱 돈독해질 것이라 믿었다. 결과적으로 나는 그녀가 변하길 바랬다. 막연한 기대였다. 


 그렇게 두 달이 지나고, 나는 그녀와 몇 번의 섹스를 했다. 그때마다 나의 후각은 태어날 때부터 없었던 것처럼 그녀에게 익숙해져갔다. 여자란 원래 그런 체취를 품은 동물이구나 하는, 그런 생각을 당연하게 하곤 했다. 정말 미친 짓이었다. 그러니까 그게 거짓말이라는 점에서 미쳤다는 얘기는 아니다. 그저 아무런 의심 없이 누군가를 위해 스스로를 속이고 말아버리며 헌신으로 포장하고, 남자다움으로 자위했던 그런 것이야 말로 사랑인 줄 알았고,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다는 것이 미친 것이다. 그 순간만은 아름답지 않냐고? 그 순간이라는 것도 지나고 보면 아무렇지 않은, 몇 달 전의 금융 위기 속보를 담았던 철지난 좌파 신문같은 것에 불과하다. 적어도 난 그렇게 생각한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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